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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그녀는, 명문 '게이오'에 진학할 수 있을까?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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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꼴통의 단기 속성 코스 명문 대학 진학기'라 할 만한 스토리. 하지만 '실화'라는 사실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한다. 분명 과정이 감동적일 것이므로, 거기엔 괜찮은 메시지가 있을 것이므로. ⓒ글뫼



영화라고 해도 믿기 힘든 실화를 영화로 옮긴 사례는 참으로 많다. 그중에서도 감동적인 건 아마 빠짐 없이 옮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만사가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법, 어디서 들어 봤음직한 식상한 소재가 줄을 잇곤 한다. 그럼에도 그런 소재를 택해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내놓다는 건, 소재 자체가 갖는 힘이 남다르거니와 연출에도 자신이 있다는 말일 게다. 그런 영화라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이상, '불량')는 시놉시스 한 줄만 들어도 전체가 그려지는, 그런 영화다. 가히 식상함에 끝이라고 할 만한 소재인데, 영화를 보고 난 후의 느낌은 '괜찮네'였다. 이처럼 대놓고 식상한 영화가 아니었다면, 'good' 이상의 소감을 들었을 만하다. 고로, <불량>은 상당히 좋은 영화라 할 수 있겠다. 


감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도이 노부히로'다. 더 이상 어떤 수식어가 필요한가 싶은 시점에, 대대적인 호평 속에 대히트 한 드라마 <중쇄를 찍자>도 연출한 그다. 이 두 작품 모두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는데, 2000년대 초반 한일 합작 드라마를 찍은 경력도 있는 그이기에 특별하다 하겠다. 


그녀는, 명문 '게이오'에 진학할 수 있을까?


왕따를 당해 전학을 가게 된 사야카, 하지만 그곳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그렇게 중학교로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곳에서는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 문제는 친구들과 너무 잘 어울리게 되었다는 것. 공부는 뒷전이고 오로지 친구들과 노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담배 핀 사실을 선생님에게 들켜 무기 정학에 처한다. 


사야카를 향한 엄마의 믿음은 영화의 키워드 중 하나이자 사야카 인생의 키워드 중 하나이다. 같이 담배 핀 친구들을 알려주면 벌을 내리지 않겠다는 교장과 담임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 사야카를 자랑스럽다고 당당히 말하는 엄마이다. 그런 엄마의 믿음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정학을 당한 김에 시간이 남으니 입시 학원에 가서 상담 한번 받아보자는 엄마의 말을 듣고 학원에 간다. 첫만남부터 '긍정'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츠보타 선생의 제안을 덥석 무는 사야카. 명문 '게이오'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다짐이다. 


사야카를 향한 엄마의 타당한 믿음, 그리고 츠보타 선생의 무한 긍정. 이 영화의 주요 키워드이자, 사야카가 명문 게이오 대학을 진학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두 기둥이다. ⓒ글뫼



츠보타 선생의 무한 긍정은 사야카 엄마의 믿음과 더불어 이 영화의 주요 키워드이다. 사야카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라 하겠다. 여기서 잠깐 게이오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한 사야카의 수준을 말하자면, 일본 지도를 그리지 못하고 동서남북을 모르며 고등학교 2학년 생이면서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수학 실력을 가지고 있다. 과연 그녀는 게이오 대학 진학에 성공할 수 있을까. 


한편 사야카에겐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는데, 그중에 남동생 류타는 어릴 때부터 아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왔다. 다름 아닌 야구 꿈나무로 프로선수로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아빠는 류타의 의사, 가족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류타만이 가족의 희망이라 말하며 일방적인 지지와 관심, 질타와 응원을 보낸다. 다른 두 아이는 안중에도 없다. 특히 그에게 사야카는 '쓰레기'일 뿐이다. 이 가족, 괜찮은 걸까. 


이 영화가 괜찮은 이유, 그럼 조금 더 양보하자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사야카가 말도 안 되는 '명문 게이오 대학 진학'에 성공할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더욱 확실하다. 그리고 과정도 어느 정도, 아니 확실히 눈에 그려진다. 엄마와 선생의 전폭적인 지지, 아빠와 담임의 일방적인 악담 사이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사야카. 계속 성장하지만 그만큼 암초를 만난다. 때론 부딪히고 때론 피하면서 전진하는 그녀는, 결국 꿈을 이룬다. 그녀를 끝까지 믿어준 엄마와 선생, 그리고 그녀의 모습에 그녀를 지지하게 된 이들의 응원, 무엇보다 그녀 자신의 악전고투 덕분이다. 


이 영화를 감동적이고 재밌게 보려면 현실과 너무 투영하며 감상하면 안 된다. 영화 자체가 갖는 이야기와 메시지를 들여다보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단기 속성 코스를 이용한 꼴통의 명문 대학 진학기'는 얼핏 전혀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느 대학을 가든지, 대학을 가지 않아도,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그 길을 달려 나가자는 이야기. 네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 반드시 1등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어른다운 어른만 되면 된다는 이야기. 이런 단계까지 온 현재에 말이다. 


이 영화는 분명 식상하고 너무도 쉽게 예상된다. 그럼에도 우린 양보할 필요가 있다. 무시하고 치워버리기엔 영화가 괜찮으니까. 이야기 자체의 매력과 메시지에 관심을 쏟자. ⓒ글뫼



그럼 조금 더 양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괜찮으니까. 버리기엔 아까우니까. 더욱더 이야기 자체가 갖는 매력과 메시지의 힘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1~2년만 해도 충분하니까.' '무조건 명문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따위는, 비록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도 과감히 머리에서 지워 버리자. 


대신, 명문을 목표로 함에 따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자신과 가족과 주의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다는 것. 믿음이야말로 삶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이자 끈이라는 사실. 같은 '할 수 있다'의 긍정이지만, 그 힘으로 자신을 버리고 사회와 시대에 헌신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바꾸고 다른 사람을 돕는 긍정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것. 이런 류의 메시지를 잘 선별해야 한다. 


언제나 믿음으로 존재할 '믿음', 그에 대한 헌사


영화 <친구>를 보면, 준석이가 상택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학창 시절 양아치짓 하겠다고 돌아다닐 때 패서라도 자신을 잡아줄 사람이 있었다면 이리 되진 않았을 거라고. 사야카의 엄마와 츠보타 선생은 사야카를 패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믿었을 뿐. 그렇다고 그녀를 방목하지도 않았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며, 이끌지 않고 뒤에서 받쳐줬을 뿐. 준석이가 바란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이끌려고 하다 보면 믿지 않고 기대를 하게 된다. 사야카의 아빠가 류타에게 기대를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인생에 반드시 뒷걸음질 치는 날이 올 텐데, 그럴 때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그 실망은 고스란히 당사자에게 전이된다. 그 한 번의 뒷걸음질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절대 그렇지 않음에도.


절대적인 '믿음'이 해체되는 가족과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만 같은 이들을 다시 뭉치게 했다. 명문 게이오로의 길은, 다시 하나되는 가족으로의 길이다. ⓒ글뫼



반면 믿음은 여전히 믿음으로 존재한다. 다른 무엇으로 바뀌지 않으며 그 하나로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다. 그리하여 해체되는 게 당연해보였던 가족이 다시 뭉쳤다. 그녀가 명문 게이오를 진학해 인생역전이 되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하지만, 꼭 그 '진학'이라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가족이 뭉친 건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는 꼴통 사야카의 명문 대학 진학기, 곧 인생역전 드라마지만, 그녀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아니, 믿음에 대한 헌사가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다. 


아마 같은 소재를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런 식으로 나오진 않았을 거다. 모르긴 몰라도 비상업적 독립 영화로 나왔을 테고, 가해자도 과거에 피해자였던 그런 식의 스토리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씁쓸함이 짖게 남았을 테다. 그건 그것대로 훌륭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영화적 재미는 확실히 떨어지니, 본 사람의 뇌리에는 남았을 것이지만 본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았을 거다. 


반면, <불량>은 교훈과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일본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식상함과 함께 전형적임을 장착했다. 그렇지만 어설프지 않게 지향하는 스타일을 정확히 고수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말했기에, '때론 식상하지만 정직하고 전형적인 영화를 보고싶다'는 마음을 충족시켜준다. '밥, 국, 김치'에 질려 한동안 다른 스타일만 찾다가 한 번쯤은 밥, 국, 김치가 너무 먹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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