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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를 이끄는, 진정한 상류를 말하다 <상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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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상류의 탄생>


<상류의 탄생> 표지 ⓒ비아북



'1% 상류층'이라는 말을 많이 접해봤을 것이다. 그 1%를 재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단연 재산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후 더욱 더 심화된 빈부격차로 전 세계 상위 1% 부자의 재산이 나머지 99%의 재산보다 많아졌다. 돈이 돈을 부르기에 그 차이는 심화될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99%이다'라는 구호로 전 세계적인 충격을 준 '월가 시위'가 있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여러가지다. 이 사회를 이끄는 이는 상류인가? 상류는 누구인가? 상류는 어떠해야 하는가? <상류의 탄생>(비아북)은 여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세계 최강대국의 저력을 잃지 않는 '미국'을 중심으로, 상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시종일관 계속되는 한국 비판과 미국 옹호, 상류와 나머지의 구분 짓기, 반복되는 몇몇 사례와 주장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는 명징한 어조가 사이다처럼 시원하다. 


이 사회를 이끄는 이는 누구인가


먼저 이 사회를 이끄는 이가 누구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상류인가, 대다수 민중인가. 저자는 사회를 이끄는 이는 상류라고 확실하게 못을 박고는 그 부분에 대해선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게 성립되지 않으면 이 책은 쓰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사회가 이처럼 살기 어렵고 혼란스럽고 '지옥'처럼 된 책임이 다른 누가 아닌 상류에게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감히 그 부분은 삭제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생각해보니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닌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그 부분이 걸려 불편했는데, 한번 다르게 생각해보았다. 분명 이 사회의 '주인'은 대다수 민중이다. 아니, 대다수가 아닌 모두라고 해야 맞겠다. 그럼 '이끄는 이'도 대다수 민중을 포함한 우리 모두일까, 아니면 소수의 사람들일까. 아마도 소수의 사람들일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 모두가 인정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에 맞는 책임의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저자는 그런 이들을 상류라고 말한 것이리라. 


모두가 평등한 이 시대에 어떻게 계급적인 느낌이 다분한 '상(上)류'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상류가 있으면 하류도 있다는 건데,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을 보면 그런 계급적 상류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보기 불편할 때도 있는데, 책을 끝까지 읽어나가면 어느 정도 상쇄된다. 저자의 상류에 대한 묘사와 주장이 오락가락할 때가 있는 것 같은데 감안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진짜 하고 싶은 말만 이해하면 되겠다. 


상류는 누구인가, 누구여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상류는 누구인지, 누구여야만 하는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상류란 누구인지 생각해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류가 있다. 고위관료, 재벌, 사(士)자 직업을 가진 이들, 저명인사 등이 그들이다. 돈이 많거나, 능력이 출중하거나, 유명하다. 그들은 상류층일까? 


저자는 그들이 이 사회의 상류층에 위치해 있는 건 맞다고 말한다. 당연히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들이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사회가 잘 굴러간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뭔가 허전하고 허술하다. 단순히 돈 많고 능력이 출중하고 유명하다고 이 사회를 이끌 자격이 있고 또 이끌 자격을 준다는 건, 어딘지 불편하다. 상류에 대한 다른 개념이 필요하다. 


책의 끄트머리에 가서 상류의 진정한 개념을 전한다. 진정한 상류란 사회가 만들어놓은 계급 체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며, '내면의 계급'을 강조한다. 내면의 품계가 높은 사람은 깊이를 추구하고 유행을 멀리하며, 다양성과 장기, 영구와 지성, 내면과 사회, 지구와 우주를 지향한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행동이 타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는 책임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놀드와 퍼셀, E. M. 포스터의 책과 말을 인용하며, 그런 사람을 X 부류라 칭하며 '부자가 아닌 귀족 계급의 일종'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해가 가는가?


이해를 떠나, 흙수저와 금수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흙수저가 진정한 상류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귀족 계급의 일종'이얄로 일확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게 아닌가. 태어나면서 정해진 게 아닌가. 그러면서 흙수저라도 내면의 품격이 있다면 상류라고 말하고 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난감하다. 


상류는 어떠해야 하는가


자연스레 '상류는 어떠해야 하는지'로 이어진다. 저자는 퍼셀이 정한 X 부류의 특징을 열거하며 진정한 상류가 지향해야 할 바를 말한다. 독립적인 사고를 지녀야 하고, 자신이 하는 일을 즐겨야 하며, 대체로 자신만을 위해 옷을 입어야 한다. 사회적 입지나 지위를 과시하는 신분의 징표를 경멸해야 하고,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며 탐지억이되 유행과 대중문화는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류가 진정한 상류로 거듭날 때, 애초에 진정한 상류가 아닌 부류는 상류가 아니어야 할 때, 그런 상류가 이끄는 사회는 비로소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 저자는 '헬조선' 대한민국의 문제 진단을 '상류'라는 부류를 통해 한 것이고, 지향할 바가 미국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자신이 비록 한국 사람이지만 미국에서 40년 간 있으면서 양국을 잘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막힘없이 잘 읽히는 어조와 문장 실력으로, 속이 뻥 뚫리는 비판을 가차없이 가하는 저자의 모습이 눈에 훤하게 그려진다. 다만 전체를 관통하는 큰 줄기가 그만큼 튼튼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쉽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과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심하게 갈리는 보니 그렇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전문적으로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문장력과 어조가 별로였다면 끝까지 읽었을지 의문이다.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책을 읽었음에 이 사회의 책임을 온전히 상류로만 돌리지 않게 된 것 같다. 상류를 향해 가차없는 비판을 가하면서도, 진정한 상류를 향해 찬양에 가까운 칭찬을 건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름 아닌 그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꼈는데, 그 부분이 이 책의 균형추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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