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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성공했지만 처참히 실패도 했던 아옌데가 남긴 것은? <살바도르 아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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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살바도르 아옌데>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 ⓒ서해문집



20세기 초중반, 세계는 요동쳤다. 어느 나라는 역사적으로 다시 없을 전성기를 누렸고, 어느 나라는 역사적으로 다시 없을 악화일로를 걸었다. 누군가는 차후 100년을 이어질 권력과 부를 손에 쥐었고, 누군가는 차후 100년은 더 이어질 가난과 설움을 견뎌내야 했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 그 격차가 심했다. 그 중심엔 오랜 시간 계속된 외세의 침략과 그에 따른 혼란과 부침이 있었다. 


체 게바라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의 중심으로,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가 이룩한 혁명과 이른 죽음은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는 쿠바가 아닌 아르헨티나 출신의 중산층 출신으로 장차 의사가 되고자 했던 사람이다. 평범한 그가 여행을 하며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참혹한 가난과 고통을 직시하고, 쿠바의 반정부 혁명군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혁명에 성공한 후 다른 나라의 혁명에 참가, 결국 전사하고 만다. 그는 혁명가였다. 


여기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인이 한 명 있다. 그는 칠레 명망가 출신으로 장차 의사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 겨우 들어간 병원 주검 안치소에서 노동자들의 참혹한 민낯을 목격한다. 이후 군대, 감옥에서 경험한 것도 다를 바 없었다. 어딜 가든 노동자들의 신음 소리뿐이었다. 그는 노동자들을 위해 사회주의의 길로 간다. 제32대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다. <살바도르 아옌데: 혁명적 민주주의자>(서해문집)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하지만 라틴 아메리카 (사회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살바도르 아옌데에 대해 최초로 소개하는 전기다.


살바도르 아옌데에 대한 모든 것


체 게바라를 말할 때 쿠바혁명과 죽음을 말하는 것처럼, 아옌데를 말할 때 반드시 말하는 것이 있다.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세웠다는 점과 죽음이다. 그는 당연한 수순처럼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부의 쿠데타로 대통령 궁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 위기로 자본주의 체제가 흔들리고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좌파 돌풍이 불고 있는 이 시대에, 아옌데가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 생각한다. 


1930년대 미국은 볼셰비즘을 막는다는 명분 하에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군부 독재를 지원한다. 그 와중에 1937년 아옌데는 사회당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 인생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불과 30세였다. 15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51년 아옌데는 사회당과 공산당의 연대조직인 '인민전선'의 대선 후보로 첫 대선을 치른다. 결과는 5.6%, 참담한 실패에 가까운 수치였지만 그는 전국구가 되었다. 


이후 아옌데는 1954년에 상원 부의장에 당선되고, 1958년과 1964년에는 사회당과 공산당 등의 좌파 연합 연대조직인 '인민연합전선'을 대표해 대선주자로 나선다. 결과는 모두 실패였다. 더구나 1959년에 라틴 아메리카를 넘어 전 세계를 강타한 '쿠바혁명'으로 사회주의는 더할 수 없는 호황이었다. 하지만 그건 미국이라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결과를 나았고, 미국의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관심과 압력은 수위가 전에 없이 높아졌다. 칠레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은 아옌데를 상당히 주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지만, 옹호하는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아니, 그동안에는 아옌데의 생에 대해 제대로 된 책이 나온 적이 없으니 오히려 객관적이라고 봐야 하겠다. 이후에 나올 거라 기대되는 아옌데에 대한 책의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아옌데는 4수 끝에 결국 대통령이 된다. '사회주의 혁명'이라 부를 만한 사건이었다. 사회당과 공산당, 급진당, 독립진보연합, 그리고 당시 여당이었던 기독민주당의 탈당파까지 모인 '인민연합'을 대표한 것이었다. 완벽한 승리라고 보기 힘들었거니와,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수없는 압력을 이겨내고 '칠레식 사회주의'를 앞세워 수많은 개혁을 추진해나간다. 그리고 역사적인 '구리 산업 국유화'를 일궈낸다. 지금까지도 칠레를 먹여 살리는 주요한 구리 산업 국유화이다. 이는 곧 그의 죽음과 다름 아니었다.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군부의 그 유명한 피노체트 장군에 의해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그는 죽음을 맏이한다. 이후 피노체트에 의한 독재가 20년 가까이 지속된다. 


분명 성공했지만 처참히 실패도 했던 아옌데가 남긴 것은?


그는 절대적으로 폭력을 배재한 혁명을 원했다. 폭력으로 이뤄낸 정권은 허무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걸, 이전의 사회주의 정권과 공산주의자들의 분열로 무너진 모습에서 처절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폭력은 고스란히 민중들에게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폭력을 배재한 채 선거로 혁명을 이뤄냈고,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폭력 없이 이끌어 나갔다.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폭력이 들끓는 라틴 아메리카 한복판에서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그의 패착이었을까? 그의 뒤를 이은 이가 최악의 피의 통치를 했으니.


또한 그는 비폭력의 연장선상에서 좌우를 가리지 않은 통합을 원했다. 그래서 우파 정당의 협조를 원했고 내부의 반대를 무릎쓰고 끊임없이 협상했다. 문제는 오히려 내부에서 터졌는데, 우파 정당과의 연대가 거의 성공했음에도 내부의 반대로 무산되자 우파 정당의 좌익 세력이 떨어져 아옌데 쪽으로 왔고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져 우파 정당과의 협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후 결국 우파 정당의 우익 목소리가 커졌고 의회 내에서의 세력 또한 커지며 좌파와의 균열이 확실해졌다. 결국 아옌데의 시도가 균열을 더 부추긴 꼴이 된 것일까? 


이처럼 아옌데의 이상적이리만치 온건적인 노선은 빛을 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럼에도 그를 칠레 역사상 최고의 위인으로 뽑고, 지금에 와서 또다시 주목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히 그의 인생 역전, 곧 칠레의 현대사는 우리 나라 현대사와 많은 부분 겹친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나라를 쥐락펴락하며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고 있고, 군부 쿠데타로 민주 정권이 무너진 경험이 있다. 또한 아옌데를 '좌파 악마'로 만드는 등 평생 괴롭혔던 보수 언론의 극악무도한 행태도 존재한다. 지금은? 지금도 물론 이 모든 게 존재하고 계속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될 거라 생각한다. 


그는 분명 성공했지만 처참히 실패했다. 이상을 실현했지만 그 뒤에 따라온 건 더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이상을 실현하지도 못하고 더 없는 고통만 받은 것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그를 성공과 실패로 재단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다만 우리는 그에게서 분명한 메시지를 얻을 수 있고 얻어야 한다. 


그의 이상을 실현시킨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선거를 통한 평화적인 혁명' 말이다. 시작도 하지 못한 혁명의 뒷 이야기를 논하고 걱정하며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하기 전에 시작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선 아옌데가 전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들어야 한다. 그의 삶 자체가 메시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를 반면교사 삼아 평화적인 혁명과 그 후의 민주주의의 지속을 논해야 하겠다. 


한 사람의 인생은 곧 한 나라, 그 역사를 대변하기도 한다. 아옌데도 그 대표적 예라 하겠다. 하지만 그 (비)극적이고 미스터리한 죽음으로 삶은 많이 가려져 있었다. 이 책 덕분에 어느 정도나마 장막을 거두고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걸 배제한 채 한 인물의 일생을 올곶이 들여다보는 건 참 지난한 일인데, 그걸 간결하고 시원시원하게 해준 것 같다. 이 책은 매력적이고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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