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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완벽한 그곳에서 살인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차일드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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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차일드 44>



영화 <차일드 44> 포스터 ⓒNEW



홀로도모르. 우크라이나어로 '기아로 인한 치사'. 1932년과 1933년 사이에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대기근이다. 이로 인해 약 30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스탈린의 정치적 의도로 일어난 집단살해였다. 아이는 아이처럼 죽어 갔고 어른은 어른처럼 늙어 갔다. 한 아이가 고아원에서 탈출했고, 레오(톰 하디 분)라는 이름을 얻어 전쟁 영웅을 거쳐 MGB(국가보안부, KGB의 전신) 최고의 요원이 된다. 


1952년, 레오는 부하 두 명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반역자를 잡는 도중, 바실리는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부모님을 무차별 살해한다. 이를 본 레오는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모든 이들이 보는 앞에서 바실리를 심하게 나무란다. 한편 누가 봐도 살해 당한 게 분명한 알렉세이의 아들을 두고, 상관에 명령에 의해 레오는 단순 사고로 마무리 짓는다. '천국에 살인은 없다'는 명분 하에서 였다. 스탈린 치하 소비에트 연방에서 살인을 당하는 것도 반역에 해당했다. 소비에트 연방은 완벽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완벽한 그곳에서 살인은 있을 수 없다


영화 <차일드 44>는 레오가 부하 두 명에게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에서 파생되는 두 개의 큰 이야기가 서로 맞물리면서 진행된다. 이 두 이야기는 모두 당시의 시대상으로 수렴된다. 1950년대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연방 시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자랑하는 그곳의 모든 것들은 철저히 국가 즉, 스탈린이 관리하고 있었다. 역사상 그 어떤 독재보다 강력한 독재 국가. 그는 곧 신이었고, 신의 나라는 완벽해야 했으며, 완벽한 그곳에서 살인은 있을 수 없었다. 온갖 종류의 조작이 일상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 <차일드 44>의 한 장면. ⓒNEW



전쟁 영웅이자 MGB 최고의 요원 레오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 결정적 요인은 아내 라이사의 스파이설이었다. 그에게 앙심을 품은 바실리가 그의 자리를 탐 내서 상부와 짜고 저지른 일이었다. 레오는 라이사와 함께 민병대로 좌천 된다. 그곳으로 가자마자 레오는 아이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그 사건이 과거에 겪었던 알렉세이 아들의 죽음과 맞닥뜨려 있다는 걸 직감한다. 그러곤 민병대 대장 네스테로프(게리 올드만 분)과 함께 파헤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바실리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계속해서 그와 함께 그의 아내를 죽음의 구렁텅이 속으로 몰아가려 하고, 그들은 어떡하든 그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온다. 그렇게 그들은 한없이 얇아진 부부의 끈을 더욱 질기게 하며 살아남는다. 그들은 살아남아 모두가 침묵하는 아이들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어야 했다. 겨우 살아남아 다시 목숨을 걸고 행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영화는 레오와 라이사 그리고 네스테로프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 보여주려 한다. 물론 바실리와 스탈린으로 대변되는 소비에트 연방을 통해서도 인간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모두 다 인간의 모습들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려 하는 인간은 전자이다. 소비에트 연방을 위해, 스탈린을 위해, 계속해서 죽어나가는 아이들을 좌시할 수 없다는 것. 아이들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중요한 미래라는 걸 말이다. 그런 아이를 지키는 게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진실을 추구하는 게 인간이라고 말한다. 엄연한 경찰인 레오, 그가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와 죽음을 무릅쓰고 아이의 죽음을 살인이라고 단정하고 파헤치는 이면에는 '진실의 추구'가 있다. 모든 걸 덮어버리는 한 마디 '천국에 살인은 없다'의 반발 심리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가 진정한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건 반발 심리이기 전에 당연한 이치라고 봐야 한다. 



영화 <차일드 44>의 한 장면. ⓒNEW



이처럼 영화는 많은 걸 보여주려 한다. 한 인간의 추락과 비상, 연쇄 살인 사건과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 죽음을 무릅쓰며 까지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과 이를 막으려는 인간과 국가, 아이의 죽음을 방치하려 하지 않는 인간과 아이의 죽음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인간과 국가 등. 이런 대립을 영화는 액션, 스릴러, 추리, 범죄, 드라마 등의 장르를 총동원해 표현해내고자 한다. 과연 잘 되었을까?


매끄럽게 잘 혼합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매끄럽게 잘 혼합되지는 못한 것 같다. 고뇌 하는 개인이 선명한 대립 구조를 만들고, 그로 인해 죽음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설정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그 고뇌에 아이들의 죽음이 있다는 것인데, 그걸 잘 살리지 못한 것 같다. 그러한 변화를 위해서 레오가 어릴 때 홀로도모르를 직접 경험했다는 설정을 넣었는데, 그 설정 자체가 크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며 레오는 시종일관 유독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는 모습까지 보인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딱히 찾기 힘들다. 어렸을 때 힘들게 자라서? 그건 그 하나 뿐이 아닐 것이고, 그 때문에 인생을 거는 건 지나친 비약이다. 



영화 <차일드 44>의 한 장면. ⓒNEW



이 영화가 더 잘 나오게 하려 했으면 이중에서 하나의 설정을 빼던가, 하나의 설정을 더 깊게 들어갔어야 했다. 그의 인생 역정 스토리보다 아이들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에 더 살을 붙였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네스테로프의 비중을 높이고 바실리의 비중을 낮췄어야 했다. 그리고 라이사의 비중이 꽤 큰 편인데, 그에 비해서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명확하게 보여줬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차일드 44>에는 완벽에 가까운 미덕이 있다. 배우들의 존재감이다. 레오 역의 톰 하디, 네스테로프 역의 개리 올드만으로도 충분하다. 거기에 라이사 역의 누미 라파스, 바실리 역의 조엘 킨나만, MGB 수장 역의 뱅상 카셀까지. 네임벨류를 넘어서는, 하나 같이 캐릭터와 혼연일체를 보여주었다. 다른 누구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히 들어 맞았다. 그리고 시대상을 완벽히 살려낸 분위기. 캐릭터와 연기, 그리고 영화의 분위기는 스토리 라인의 아쉬움을 날려버리고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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