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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그대 그리고 나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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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넘겨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내가 그녀와 처음 말을 나눈 순간이었다. 대학 강의 시간이었는데, 그녀의 발표 후 바로 내가 발표를 하였다. 그녀가 내 발표 PPT를 넘겨주겠다는 제안이었는데, 내가 거절했다.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렇게 1년 반 동안의 '지켜봄'이 시작되었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나? 그녀와 난 같은 과였는데, 1년 반 동안 즉 3학기 동안 같은 수업을 5개나 들었던 것이다. 매학기마다 1~2개의 강의를 같이 듣게 되었다. 서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당연히 친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같은 수업을 선택했을까? 더욱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이 아닌 것도 있었다. 


처음 봤을 때 반했는지, 매학기마다 같은 수업을 들으니 점점 호감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녀에게 호감이 갔다. 길에서도 마주치고, 도서관에서도 마주치고, 엘레베이터에서도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냥 인사만 하고 가던 길을 갔다. 


언젠가 밤새 놀다가 새벽녘에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저멀리서 도서관으로 가는 그녀가 보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는데도 뭔가 신경을 쓰고 있는 분위기였다. 조금은 허세스러운 느낌? 그런데 내가 아랫쪽에 있었고 그녀가 윗쪽에 있어서 그런지, 그녀에게서 광채가 났다. 마침 그녀 뒤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또 한번은 숙제를 위해 친구들과 도서관을 찾았는데, 마침 같은 수업을 듣고 있던 그녀가 있었다. 나를 본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곤 수북히 쌓인 책을 들고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게 아닌가? 난 상처를 받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아니라 내 친구들을 보고서 그랬던 거란다. 그녀는 그들이 마냥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다니는 나도 싫었다고. 


1년 반이 지난 뒤 난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그녀와 난 같은 과, 나는 언젠가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물어 보았다. 1년 반 만에 말이다. 그 한마디는 우리의 운명을 바꾼다. 


너도 중국 가니? 나는 가는데.

네, 저도 중국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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