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하다/그대 그리고 나

늘 함께 있어 소중한 걸 몰랐던 거죠

반응형





얼마 전에 핸드폰이 고장났어요. 수리할 때까지 이틀 정도 사용을 못했죠. 아이폰 4로, 구입한 지 4년하고도 반년이 되어서 올해 안에 바꾸려 했지요. 오래 되다 보니 너무 느려져서 평소에 잘 사용하진 않아요. 그냥 전화, 문자 정도? 그런데 계속 신경이 쓰이는 겁니다. 사람으로 치면 많이 아픈 거잖아요. 


그동안 잃어버린 적도 없고 또 고장난 적도 없어서 그 소중함을 전혀 몰랐었던거죠. 느리다고 화내고 2G 폰보다 후지다고 짜증만 내곤 했지요. 그런데 막상 고장이 나니까 굉장히 허전했습니다. 심지어는 조금 외롭기까지 하더라고요. 그냥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할 것 없이 뒤적이는 것만으로도, 무료함과 심심함을 달래주었던 걸 깨달았죠. 


오래 되어 익숙해진다는 건 참으로 무서운 것 같아요. 저희 커플도 딱 4~5년 차에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서로가 너무 익숙해지다보니 그 전 만큼의 설렘은 사라지고 싸우는 날이 많았어요. 서로가 너무 잘 알다보니 어느 부분을 건드리면 폭발할 걸 알고는 괜히 건드려 보는 거죠. 그럴 때의 마음에게 '왜'라고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을 거예요. 왜 그러는 지 모르니까요. 


언젠가 여자친구가 해외에 한 달간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어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크게 대수롭지 않았는데 날이 다가올수록 떨리는 거예요. 그동안 한 번도 이렇게 오래 못 본 적이 없는데 말이에요. 익숙함이 오히려 독이 되어 저희들을 공격해 왔죠. 핸드폰 고장난 적 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한 한 달이었어요. 곁에 없으니까 마치 혼자가 된 기분이었어요.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가 기억나요. 뭔가 어색했죠. 낯설기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사이가 전과는 다르다는 걸 알았죠. 다행이도 좋은 쪽이었어요. 전에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되고 느끼게 되었어요. 조금은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어요. 그때 그 기분이 생생하네요. 


H.O.T.의 <빛(Hope)>에 이런 가사가 나와요. "늘 함께 있어 소중한 걸 몰랐던 거죠.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준 소중한 사람들을." 상당히 사실에 입각한 가사인 것 같아요. 여기에는 오래된 커플뿐만 아니라 가족도 해당되겠죠. 그런데 언젠가 가족이 될 커플이, 가족도 되기 전에 서로의 소중함을 모르고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경험도 하지 못하면 안 되겠죠?


저희는 얼떨결에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경험을 해보았지만, 그것도 서로의 마음이 맞아야 하는 것 같아요. 이번 기회를 그런 경험으로 승화(?)시켜 보자. 너무 계산적인가요? 그렇지만 계속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계산적인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이런 기회가 없다면 주기적으로라도 '낯설게 보기'가 필요해요. 


때론 옛 추억을 함께 회상하며 '그땐 그랬지' 하는 것도 좋아요. 미래의 모습은 상상은 할 수 있지만 실체는 없잖아요. 반면 과거의 모습은 기억할 수 있어요. 다만 지금과는 다른 낯선 모습으로요. 지금보다 좋았던 때도 있을 테고, 나빴던 때도 있을 거예요. 둘 다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랜만에 함께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 보세요. 다시 돌아왔을 때는 뭔가 조금 달라져 있을 거예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