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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망치질로 흩트러진 집을 바로 잡고 사람들의 마음을 잇다 <기다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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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기다리는 집>



<기다리는 집> 표지 ⓒ에스티임



동네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집이 있다. 분명 한 때는 사람이 살았을 텐데, 지금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그렇다고 폐가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꿋꿋하게 열매를 맺으며 잘 자라는 감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이 집에 대한 소문은 으레 아무도 살지 않는 버려진 집에 대한 소문이 그렇듯 무성하다. 이렇게 되기 전까지 할머니 한 분이 살았고, 그 전에는 한 가족이 살았던 건 분명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건지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자식들이 부모님을 버렸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그런 집에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 온다. 그는 다짜고짜 집을 가꾸기 시작한다. 동네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을 하고 물어 와도 대답이 없다. 묵묵히 집을 되살리려 할 뿐이다. 동네 터줏대감인 떡집 영감은 이 집을 지근 거리에서 살피고 있다. 그는 이 낯선 이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집이 다시 살아나기를. 


어린이에 맞는 감성, 어른도 공감하는 스토리와 짜임새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동화 작가가 된 황선미 작가의 신작이자 또 다른 어른을 위한 동화 <기다리는 집>(에스티임)의 이야기다. 어린이에 맞는 감성을 유지하되, 어른도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와 짜임새를 견지하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마냥 유치한 게 아니라 잔인한 면모까지 지니고 있는데 <기다리는 집>도 크게 다르지 않다. 


흉물스럽게 버려진 집, 그런 집에 찾아온 정체 모를 이방인, 동네에서 그나마 이 집을 잘 알고 관심도 가지고 있는 떡집 영감, 그리고 역시 누군지 알 수 없는 동네 아이들까지. 책은 집과 둘러싼 비밀을 흩뿌려 놓으며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 않게 만든다.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만으로 서스펜스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한편 문체와 감성에서 동화다운 면모를 놓치 않고 있다. 


"감나무 집을 멍하니 바라보는 남자 얼굴에 햇살이 들었어요. 아픈 데가 건드려지기라도 한 듯 찡그리던 남자는 갑자기 켜켜이 쌓여 있던 것들을 마구 흩트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허물어지듯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나 꾹 다문 입술이며 깊은 눈초리는 그대로였습니다. 꼭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처럼." (본문 중에서)


한편 흉물스러운 집에는 정체 모를 한 남자와 더불어 동네 아이 태오가 드나든다. 태오는 늘상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남자가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때문이었는지 남자가 집을 살리는 작업을 할 때 태오가 도와주곤 한다. 그런 아이가 싫지만은 않은 듯한 남자. 뚝딱 뚝딱. 그들의 마음을 다듬어주는 망치질 소리가 동네에 퍼진다. 


마음을 단단하게 이어주는 '망치질'


망치질은 무엇을 만들 때 쓴다. 집을 만드는 데 쓰는 건 물론이다. 누군가 혼자서 망치질을 하고 있으면 나도 동참하고 싶어진다. 그건 아마도 사람의 영혼을 깨우는 망치질 소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망치질을 행하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가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같이 하고 싶다' '함께 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들게 한다. 그리고 같이 망치질을 하며 무엇을 만들다 보면 그 무엇과 함께 서로의 마음도 단단하게 이어지는 걸 느낄 것이다. 


작가가 '망치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망치질 소리로 이어지고 단단해지는 마음. 쪼개져 있던 동네 사람들(현대인)의 마음을 잇고자 하는 의도. 흉물스러운 집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걸 보고 자신도 모르게 그 의도를 따라가게 되는 사람들. 무엇보다 문제아로만 알았던 동네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알게 해준 집과 낯선 남자 그리고 망치질. 


웃으며 뚝딱 뚝딱.

인사 나누며 툭툭 탁탁.

궁금하던 걸 서로 물으며 툭탁 툭탁.


책은 누군가에 의해 불이 난 집과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낯선 남자, 그리고 그 집과 그 남자가 걱정스러운 태오와 떡집 영감, 위기에 처한 집을 되살리려는 동네 사람들의 노력으로 이어지며 마지막을 향해 치닫는다. 하지만 끝나기 직전까지 흩뿌려 놓은 비밀들은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그 비밀이 풀려지며 곧 작가의 의도가 훅 감동과 함께 몰려온다. 


동화소설류의 최종 진화판 '기다리는 집'


90년대를 강타한 안도현 시인의 <연어>는 단순하고 간결한 문체와 스토리 라인으로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노출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반면 이 책은 작가가 지니고 있는 소설적 역량을 투입해 <연어>보다 더 깊이 있는 소설적 기법과 캐릭터를 부여했다. 시종일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캐릭터와 끝까지 그 비밀을 드러내지 않으며 독자들로 하여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유명한 동화 소설을 뽑자면 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있다. 지극히 아름다운 언어. 길이 남을 주옥같은 문장. 온갖 상징으로 가득 찬 배경. 이 작품은 오랫 동안 우리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우리가 놓지 않고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연어>와 <어린왕자>는 분명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있다. 물론 현실을 빚대어 표현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소설적인 측면보다 동화적인 측면을 강조해 자칫 유치하다는 시각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기다리는 집>은 그야말로 현재까지 나온 동화소설류의 최종 진화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계속해서 나올 이런 종류의 책의 기준이 될 만하다. 배경과 캐릭터, 사건 등을 모두 현실 세계로 가져오는 동시에 소설적 기법을 도입해서 단점을 커버해주었고, 문체와 감성적인 면모 그리고 메시지에서는 동화적인 측면을 고수해 장점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인기는 <어린 왕자>를 비롯해 <연어>, <마당을 나온 암탉> 만큼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아직은 동화소설에서 얻고 싶은 건 동화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다. '성취'는 있겠지만 그만큼의 '성과'는 없을 것이다. 모험 아닌 모험을 감행한 황선미 작가의 신작 <기다리는 집>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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