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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나이트 크롤러> 자극적이라면 모든 게 용서 되는 세계에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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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이트 크롤러>



<나이트 크롤러> ⓒ스톰픽쳐스



"방금 들어온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저희 방송국에서 단독으로 입수한 영상을 전해드립니다."


뉴스를 시청하다 보면 종종 들을 수 있는 한 마디이다. 속보와 단독. 속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얻고자 하는 것일 테고, 단독은 방송국 입장에서 얻고자 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방금 일어난 사건·사고에 대한 속보는 도대체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것일까? 거기에 단독 보도라면? 방송국에 사람이 아무리 많다 한들 전국 곳곳에 퍼져 있을 순 없을 텐데 말이다. 


속보로 들어온 영상을 보면 심하게 흔들리면서 핵심적인 장면만 보여줄 뿐 현장의 전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야말로 급조한 느낌인 것이다. 이런 영상을 볼 때면 방송국의 전문 카메라맨이 아닌 아마추어가 찍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CCTV나 자동차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조악한 느낌이다. 


특종이 될 만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방송국에 팔아넘기는 이들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바로 이런 속보와 단독 보도를 위해 방송국에서 해당 사건·사고의 영상을 찍은 사람에게서 영상을 사서 방송으로 내보내는 내용을 다룬다. '나이트 크롤러'는 본래 지렁이란 뜻으로 굳이 따로 떼면 밤의 아첨꾼, 밤에 기어 다니는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특종이 될 만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방송국에 팔아넘기는 이들'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수식을 달자면 살인, 폭력, 범죄, 화재, 차량 사고 등의 지극히 자극적인 현장들이고, 방송국에는 아주 비싸게 팔아넘긴다. 


주인공 루이스 블룸(제이크 진렌할)은 철사와 구리선을 훔쳐 팔아 생계를 이어나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신을 아무리 잘 포장해 어필해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자동차 사고 현장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재빠르게 도착해 후다닥 영상을 찍어내고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그들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걸 들은 블룸은 이 영상이 돈으로 환산 된다는 정보를 얻는다. 


블룸은 자전거를 훔쳐 팔아 캠코더와 무선도청기를 구입한다. 훔친 자전거로는 절대 살 수 없을 가격이었지만, 그는 사기꾼도 속아 넘어갈 만한 화려한 언변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경찰의 무선을 도청해 사건·사고 현장에 재빠르게 도착해 무작정 캠코더를 들이대고 영상을 찍기 시작한다. 무수한 욕을 먹고 비참하게 쫓겨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야말로 불굴의 의지를 갖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나이트 크롤러>의 한 장면. 한국 상점들의 간판이 눈에 띈다. ⓒ스톰픽쳐스



영화를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다름 아닌 OST이다. 시작부터 나오는 OST는 영화 내내 알게 모르게 희망적이다. 영화의 장르는 분명 범죄 스릴러에 가까운데, OST가 음습하지 않고 희망적에 가깝다니 조금 의아하다. 그건 영화를 다 봐야 그나마 어렴풋이 느낄 수 있는 부분인데,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게 뉴스에 관한 것 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역설적 희망


영화는 시종일관 주인공이 도청을 한 다음 사건·사고 현장을 찾아가 조작까지 해가며 자극적인 영상을 찍어 협상을 통해 방송국에 최대한 비싸게 팔아먹는 걸 반복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주인공의 직업에 대한 일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어필하게 한다. 자신은 프리랜서에서 멈추지 않고 제대로 된 사업을 할 것이니 그에 맞는 구색과 실력과 노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며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누구나 이 영화를 보면 자극적 보도 만을 일삼는 미디어 매체에 보내는 사회적 메시지에 대한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일을 하지 못하고 청춘을 보내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역설적 희망이 있다. 블룸은 비록 그 방법이 너무나 잘못된 것일지라도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블룸은 어느새 방송국과 긴밀하게 연결되기에 이른다. 블룸은 이 지역 꼴찌 방송국의 사건·사고 전문 뉴스의 프로듀서를 협박 아닌 협박으로 구슬려 더욱 더 높은 가격으로 영상을 팔곤 한다. 하지만 항상 최고의 자극적인 영상을 누구보다 빠르게 가져올 수는 없는 법. 언젠가 한번 대박 뉴스를 타 방송국에 빼앗기고 불같이 화내는 프로듀서의 닦달에 블룸은 급기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저지른다. 



<나이트 크롤러>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



물론 전에도 심의에 아슬아슬한 영상을 찍어오곤 했었다. 예를 들면 사건·사고로 죽은 사람을 찍어서 내보낸다는 지 하는 것 말이다. 문제는 더 자극적으로 하기 위해, 누구보다 빨리 현장에 가서 신고를 하는 게 아니라 영상을 찍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누구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했으면 어떻게든 사람을 살릴 생각을 해야지 그걸 이용해 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다니? 절대 이해가 가지 않을 듯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무슨 이해?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어김 없이 들려오는 소식이 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를 들었다 놨다 하는 톱스타들의 연애설. 이런 특종이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말들은, 사생활 보호와 알 권리이다. 그렇지만 사실 매체들이나 이걸 보는 이들 모두가 원하는 건 자극적인 것이다. 이 자극적이란 말 안에는 처음 보는 것, 폭력적인 것, 야한 것, 은밀한 것 등이 포함된다. 자극적인 거라면 모든 게 용서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영화가 태어날 이유도, 이런 영화가 우리에게 큰 메시지를 던지며 다가올 이유도 없을 테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건 누구의 탓?


요즘 기자에 대한 비난이 심상치 않다. '기레기'라는 속어까지 등장할 정도이니 말이다. SNS에 올린 유명인들의 말들과 일반인들의 답글을 그대로 퍼와 기사로 내보내던가, 사실을 확대하거나 왜곡해 기사로 내보내는 건 애교로 봐줄 수 있을 정도이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어떻게든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짓까지 서슴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사람 목숨이 걸린 현장에서 말이다. 


물론 현장에서 기자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기도 하고, 최고로 자극적인 영상을 가져가지 못했을 때는 자신의 인생에서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건 기자들 개인 만의 잘못이 아닌, 미디어 매체 전체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욕을 하면서도 그런 기사를 보는 독자들도 이 거대한 잘못에 한 몫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이다. 



<나이트 크롤러>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



영화에서도 자극적이고 잔인한 영상에 크게 일조하는 이가 뉴스 프로듀서이다. 그리고 그 사람을 웃게 하고 살아남을 수 있게 하는 건 바로 시청률이다. 이런 방송이 시청률이 높다는 건 곧 사람들이 자극적일수록 더 좋아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겠는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건 누구의 탓이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세상 모두의 탓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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