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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의 역사> 파격적인 시도로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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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 가족의 역사>


<내 가족의 역사> 표지 ⓒ북멘토

주말에 아내의 말을 듣고 골동품 시장을 산책하는 한 남자. 마음에 드는 책이 있어 흥정을 하고 있던 도중, 근처에서 상인과 손님이 시비가 붙는다. 상인은 '애국주의의 국보'라는 물건을 너 따위에게 팔 수 없다며 소리를 치고 있었다. 시비가 일단락 나고 그 물건에 흥미를 보이는 남자. 상인에게로 가 물으니 그 물건은 일본과 청나라가 싸우는 그림이라고 한다. 급격히 관심을 갖는 남자. 컬러이고 20~30폭을 하나로 합쳐 놓았다는 그 그림을 보기 위해 상인을 따라 후미진 곳으로 따라 나선다. 


그 그림의 제목은 <지나정벌쌍륙도>. 1894년에 그려진 것으로 '청일 전쟁'이 배경이다. 상인은 그림의 값으로 최소 2만 위안(약 360만 원) 이상을 부른다. 남자는 그따위 것이 그리 비쌀 이유가 있냐며 따지지만, 상인은 그 그림이 '일본인들이 중국을 괴롭힌 역사를 그린 것이기에 자손 대대로 남겨 교훈으로 삼아야 할만 한 가치가 있다'며 오히려 남자를 설득한다. 결국 이들은 생각 끝에 260 위안(약 5만 원)에 사흘만 빌리기로 한다. 상인은 남자의 사람 됨됨이를 믿었고, 남자는 상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 만화 <내 가족의 역사>(북멘토)의 주된 줄거리는 이게 거의 전부다. 사실 여기에서 한 남자는 저자인 리쿤우이고, 아마도 상인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은 사실에 기초했을 것이다. 만화가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미덕인 희극적인 요소를 이 만화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에 그림체가 굉장히 거칠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즐길 만한 구석 또한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만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만화를 포기하는 대신 실제 그림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


그 첫 번째 이유는 <지나정벌쌍륙도>이다. 이 그림은 일본인이 그린 것으로, '쌍륙'은 일종의 장기 같은 게임이라고 한다. 즉, 당시 일본인들은 중국과의 전쟁을 게임으로 생각했던 것. 만화에서는 이 20~30폭으로 되어 있는 그림을 실사로 보여준다. 만화를 포기하는 대신 실제 그림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히 전했다. 그림을 똑같이 다시 그리려고 하지 않고, 그림은 그대로 둔 채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면들이 더 믿음이 간다. 저자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느껴진다. 


상인 라오치와 남자는 다시 만난다. 라오치는 믿음이 가는 남자에게 일본의 중국 침략에 관한 옛날 사진을 소개 시켜 주려 한다. 그것도 전부 일본인이 찍은 사진들을. 그 사진들은 라오치의 스승이 오랜 시간 동안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들이었고, 남자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만화가 시작할 때 쯤 라오치가 말했던 '애국주의의 국보'를 볼 자격이 남자에게는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남자는 기대 반 불안함 반으로 라오치와 같이 찾아간 라오치 스승의 집에서 다름 아닌 '중일 전쟁'에 관한 옛날 사진 수 백 장을 본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밤중까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일본어로 되어 있어 어떤 내용인지 알 수 없지만, 사진 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지는 전쟁의 상흔들... 그 사진들은 그 자체로 역사다. 


채 반도 되지 않은 시점부터 책은 더 이상 만화임을 포기한 듯하다. 총 270여 쪽에 달하는 책은 100여 쪽부터 계속해서 '중일 전쟁'에 관한 옛날 사진들을 보여준다. 거기서 이 책이 만화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중간 중간 보이는 말풍선과 카메라 그림, 그리고 그에 관해 말을 주고 받는 장면들 뿐. 하지만 그 장면들조차 이 사진들을 설명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사실상 만화가 가지는 가치나 미덕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만화 외적으로 파격을 시도하다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 이 만화가 갖는 두 번째 가치가 있다. <지나정벌쌍륙도>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었듯 이 사진들도 있는 그대로를 실었다는 것. 이쯤 되면 단순히 작가가 전하려는 바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함을 넘어, 만화 외적으로 파격을 시도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만화가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간략하게 그린 그림'이라고 할 때, 그 중심을 '이야기'에 두느냐 '그림'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요즘은 '그림'에 월등한 방점을 두고 예쁘고 멋있게 그리는 것에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 만화 <내 가족의 역사>는 '이야기'를 넘어서 '메시지'에 방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완벽히 하기 위해서 '이야기'와 '그림'이라는 만화의 두 축을 일정 정도 포기한 것이리라. 대단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사진이 정말 질릴 정도로 많이 나오기 때문에, 솔직히 한 번 이상 보기가 힘들다. 그걸 작가도 잘 알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 책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렇다면 이 책을 보고 깨달은 게 있어야 하겠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 하겠다? 나쁜 일본 놈들을 더욱 증오해야 겠다? 매국노들이 한 짓 또한 잊어서는 안 되겠다? 역사 교육을 다시 제대로 해야 겠다? 이 모든 게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작가의 말로 대신한다. 


"해묵은 감정을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건드릴 수 없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 중국인도 그렇고 일본인도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에 대한 기억은 현실을 향한 응시이자 미래를 향한 전망입니다. 이 만화의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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