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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위한 시간> 명징한 정신과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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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침묵을 위한 시간>


<침묵을 위한 시간> 표지 ⓒ봄날의 책

우리가 잘못 인지 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말'에 대한 것이다. 하나는 전자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사람들 간의 대화 시간이 줄어 들었다는 생각. 하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의사소통 시간이 늘어났다고 한다. 여자는 하루 평균 25,000개의 단어를, 남자는 10,000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한다. 


이는 자연스레 다른 하나의 오해로 넘어가는데, 말을 입으로 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인다는 것. 이제는 입으로 뿐만 아니라 손으로 하는 말도 넓은 의미의 말로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확실히 우리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말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생각의 과잉으로 이어진다. 입으로 생각을 방출하지 않고 손으로 저장하다 보니 생각은 계속 쌓이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리 없는 침묵이 더해가지만, 실상 소리 없는 소음이 우리를 시시각각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가끔은 진짜 침묵이 너무도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진짜 침묵이 무언지 알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무섭고 견딜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수도원이란 어떤 곳인가?


아무래도 침묵하면 떠올리기 쉬운 것이 종교이다. 경건함 속에서 신을 영접 하는 장소, 그리고 시간. 그 중에서도 가톨릭의 수도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듯싶다. 개인적으로 수도원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지만 '유럽 수도원 기행'이라는 부제가 달린 <침묵을 위한 시간>(봄날의 책)이라는 책을 통해, 수도원을 느낄 수 있었고 동시에 케케 묵은 오해도 풀 수 있었다. 


이 책은 '패티'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영국의 전쟁영웅이자, 독특한 문체와 깊이 있는 관찰이 돋보이는 20세기 최고의 여행작가 중 한 사람인 패트릭 리 퍼머가 유럽의 4개 수도원을 여행하고 쓴 에세이다. 여행기 답게 기막힌 묘사와 함께 잔잔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음에도 이 책 만으로 수도원이 그려지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면 이 책은 절대 찬사를 받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책에는 단순한 여행기를 넘어서는 무엇이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수도원에 관련된 역사, 수도원 생활과 문화에 대한 관심과 그에 따른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정보,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할 수도사의 생활과 그에 반하는 바깥 세상의 생활 등이다. 각주를 제외한 본문 분량 만으로 100쪽이 채 되지 않는 이 책에 그런 부분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것이다.  


수도원에 대한 하찮은 오해


물론 이 책의 초판이 나온 지 60년이 흘렀지만, 수도원 생활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여전히 금욕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고독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수도사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려지는 검정색 수도복을 입고 중얼거림조차 배제한 침묵의 일생을 보낼 것이 아닌가? 그런데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책은 보여준다. 


"그들에게서는 묘지를 연상시키는 음침함이나 편협함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의에 바친 자신의 삶에 진지하게 임하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서로 어울릴 때 보면 그들은 균형 잡히고 박식하며 재치가 넘치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여느 프랑스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본문 중에서)


이런 수도원이 있는가 하면, 다른 수도원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음침하기도 하다. 그들은 황야에서 겪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겟세마니 동산에서 방황했던 그리스도의 고뇌, 십자가의 길과 골고타 언덕에서 끝난 그리스도의 마지막 희생에 대한 평생에 걸친 모방의 일환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영적 수련을 평생에 걸쳐 한다. 그들에게 수도자의 삶이란 길게 이어지는 속죄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고행 하는 삶이 어떤 영적인 위안을 준다고 말한다. 그 위안은 곧 '길게 이어지는 천국의 암시'라고 표현해도 좋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 그 이상이다. 이를 행복한 침묵이자 행복한 고독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전적으로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생각의 과잉에 하루라도 골머리를 썩지 않을 날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줌이 분명하다. 


"수도원은 무덤의 정 반대가 되었다. 수도원은 어떤 비밀스러운 길을 찾는 사원이나 고통을 잊게 하는 마법의 약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조용한 대학이자 시골 저택이었고 일상의 괴로움과 고민거리들이 닿지 못하는 공중에 뜬 성이었다." (본문 중에서)


저자의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저자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수도원 4개를 여행하며 우리에게 무엇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수도원에 대한 하찮고 편협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을 것이고, 궁금했을 수도원 생활과 수도사의 삶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며, 수도원에 관련된 박학다식한 지식을 뽐내고도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수도원에 간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술과 파티로 런던 생활에 환멸을 느끼며, 서머싯 몸이 그를 두고 '상류층 여성들을 상대하는 제비'라고 칭한 적이 있을 정도의 '끼'가 있었던 저자는 삶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도원을 전전하게 된 것이리라. 그러면서 여행서로서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구성과 문체를 선사해 주니 저자는 상당히 영악한 자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여전히 뭔가 우리에게 와 닿는 의미가 빠져 있는 것 같다. 무엇일까? 침묵과 고독의 대명사인 수도원과 우리의 삶이 맞닿아 있는 게 무엇일까? 아무래도 그건 수도원 생활을 방문객 신분으로나마 직접 체험하면서 저자가 겪은 변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아니, 순간순간 끊임없이 달려드는 모든 것에 시달린다. 더군다나 스마트폰 혁명의 광풍이 불어 닥친 후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의 속도와 양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런 와중에 저자가 수도원 생활을 하며 느끼는 변화, 즉 '명징한 정신과 호수처럼 잔잔한 마음'은 더없이 진하게 다가온다. 어느새 상상하기 힘들게 된 그것들이, 이 책을 보며 조금이나마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 삶에 '침묵을 위한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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