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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위대한 망가> 앞으로 접하기 힘들 것 같은 그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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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위대한 망가>


<위대한 망가> ⓒ로그프레스

얼마 전 동네에서 유일하게 남아 명맥을 유지하던 만화책 대여점이 문을 닫았다. 얼핏 20년 간 그 자리를 지키며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던 곳이었다. 물론 필자에게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곳으로의 발길이 둔해졌다. 무엇보다 매주 소화해야 할 책이 있었고, 같은 책으로서 만화책은 아무래도 멀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 


인생에서 수천 권에 육박하는 만화를 봐왔기에, 만화가 주는 의미가 남다를 것이 분명하다. 생각해본다. 만화가 나에게 준 의미를. 무엇보다 만화는 즐거움과 재미를 주었다. 아무리 스토리가 재미없다고 느끼더라도 그 자체로 재미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바꿔 말하면, 만화를 보는 행위 자체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외부 세계와 닫힌, 눈으로 보이는 가상의 만화 세계. 이 밖에도 실질적인 꿈과 희망, 반대의 지독한 현실도 일깨워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지식을 얻기도 했다. 


어느 때부터 만화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봐야 할 건 많아졌지만, 그만큼 볼 필요가 없는 것들도 많아졌다. 우리가 접하는 건 주로 일본 만화인데, 역사가 오래되면서 소설처럼 고전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만화도 걸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자 신작에 대한 수요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최소한 필자의 경우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보았던 명작을 다시 찾게 되곤 했다. 한 번에 완결 편 수십 권을 빌려서 다시 보곤 하는 그런 하루. 


몇 번이고 다시 보는 목록이 생겼고, 급기야 지금은 대여가 아닌 구입으로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대략 읊어보면 다음과 같다. <드래곤볼>의 토리야마 아키라, <슬램덩크>의 이노우에 다케히코, <몬스터>의 우라사와 나오키, <아돌프에게 고한다>의 데즈카 오사무, <베르세르크>의 미우라 켄타로, <강철의 연금술사>의 아라카와 히로무 등. 


'에이코믹스'라는 만화 전문 웹진에서 연재 중인 '강상준의 불가항력 만화방'이라는 코너가 있다. 한마디로 걸작 일본 만화를 소개하는 코너인데, <위대한 망가>(로그프레스)라는 제목으로 엮어져 책으로 출간되었다. 코너의 1부 32편을 순서만 바꿔 고스란히 옮겨 놓았는데, 정말로 오랜만에 보는 만화에 대한 책이어서 반가웠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불황인 출판계, '웹툰'이라는 거인의 출현으로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만화책 시장, 그리고 원래부터 내재되어 있던 한국인들의 만화에 대한 차별된 시각까지. 이런 상황에서 이런 책이 나오는 건 진실로 어려워 보이며 그만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만화책 키드로서 고마운 마음과 왠지 모를 쓸쓸한 감정이 앞선다. 필자도 이제 만화책을 접하기가 요원해진 상황에서, 앞으로 이런 책을 접하기 힘들 것 같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에 소개된 32편의 만화에 대한 리뷰를 꼼꼼히 살피며 언젠가 꼭 찾아 볼 것을 다짐했다. 쭉 보니, 32편 중 필자가 접한 만화는 10편이 채 되지 않았다. 그동안 수천 권의 만화책을 보았고, 더군다나 나름 걸작만 엄선해 본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라니 조금은 실망감이 들면서 한편으론 흐뭇한 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씁쓸했다. 목차 만으로도 복잡한 심정이다. 


왜 하필 이제야 이런 책을 접했는지에 대한 씁쓸함, 앞으로 접할 만화가 이리도 많다니 하는 흐뭇한 웃음, 그동안 많은 돈을 들여 접한 만화에 대한 조금의 실망감까지. 여하튼 책은 <강철의 연금술사>부터 시작한다. 제목과 만화가 이름, 연재된 잡지와 한국에서 출간된 출판사 이름, 일본에서의 연재일까지 한 페이지에 상세히 나열한 뒤 리뷰를 시작한다. 


이 강상준이라는 저자의 리뷰는 진실로 해당 만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무엇이 있다. 일본 만화의 역사, 특징, 분류부터 해당 만화가와 만화의 스펙, 줄거리, 장점과 단점을 총망라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던 부분은 해당 만화가의 작품들에 대한 얘기다. 특징, 변천사, 에피소드 등.


예를 들어 <Let's Go!! 이나중 탁구부> 등의 저자로 엽기개그 코드 최강자 후루야 미노루는 <두더지>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폭력과 사회부적응자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듦으로써 새로운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베르세르크>의 미우라 켄타로는 이 작품을 1989년부터 25년째 연재하고 있는데, 1992년부터는 오직 이 작품 하나에만 전념하고 있다. 그야말로 '장인(匠人)'이 아닌가. 


<강철의 연금술사>의 경우, 연재 도중 방영된 TV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영향력이 원작을 뛰어넘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원작이 애니메이션과 상당히 다른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수천 만 권이나 팔렸음에도 상대적으로 그 파급력이 덜 했다. 


반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애니메이션은 '졸작'이고 만화는 '걸작'이라 한다. 애니메이션과 만화 모두 '걸작'인 <강철의 연금술사>와는 다르게 말이다. 개인적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애니메이션과 만화 모두 접하지 못해서 찬반의 의견을 낼 수 없지만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원피스>는 누계 판매량이 3억 부에 육박할 정도로, 명실 공히 일본 제1의 소년만화이다. 에누리 없이 역대 최고이다. 하지만 전 연령대에 두루 인기가 있는 일본에서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말 그대로 '소년'만을 위한 만화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만화에 대한 편견을 단편적으로 알려주는 사례다.  


볼거리가 넘쳐 나는 지금, 분명 만화는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그렇지만 '걸작' '명작'은 시대와 분류를 초월한다. 어떤 콘텐츠인지를 초월해 좋은 작품은 오래도록 남는다. 만화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이 책에 소개된 32편을 포함한 걸작들의 설 자리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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