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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경성천도> 일본의 수도가 서울에 들어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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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경성천도> 어느 군국주의자의 외침


<경성천도> ⓒ다빈치북스

제 작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중 <각시탈>이라고 있었다. 이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로 '키쇼카이 집단'(실제로 존재하는 이 집단은, 극 중에서 메이지 유신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무라이 무사들을 발빠르게 규합해 만든 극우단체로 설정되어 있다.)이 등장하는데, 이 집단은 드라마의 중반에서 '경성천도'를 주장한다. 잠시 그 대사를 옮겨본다. 


"(조선의) 경성으로 수도로 옮겨 섬나라 일본이 제국의 일본으로 거듭나야 한다."


극 중 키쇼카이 회장의 딸이 한 말이다. 이 말이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비록 당시가 일제 시대였다고 하지만 일본 본토에 있는 수도인 도쿄를 조선 반도의 경성(서울)으로 옮기려는 음모였다. 이 음모가 실현되었다면 지금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복거일 지음, 문학과 지성사, 1987)의 배경처럼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드라마를 통해 이 음모를 처음 접해보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지 극에 극적 장치에 불과한 허구라고 생각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경성천도'의 주장은 80년 전 실제로 존재했었다. 


1933년, 서울 경성제국대학(현 서울대학교) 앞에는 흥아연구소라는 조직이 꾸려진다. 연구소의 소장 도요카와 젠요는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일본 제국주의 평창책의 일환으로 1급 문건을 작성한다. 이 비밀 작업은 일본의 수도 도쿄를 서울로 이전 시켜 만주와 일본 열도를 잇는 거점이자 대동아공영권의 중추로써 한반도를 영구 지배하려는 야심찬 공작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었다.


<경성천도>라는 책의 서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책의 저자이자 흥아(興亞, 아시아를 흥하게 하자는 의미)연구소의 소장인 도요카와 젠요는 조선으로 건너오기 전, 일본과 해외 각지에서 교편을 잡았던 이력이 있다. 일종의 사상가였던 것이다. 


<京城遷都論(경성천도론)> 도요카와 젠요 지음, 1934 ⓒ독립기념관

그는 이 책에서 진정 자신의 나라를 걱정하며 작은 일본에서 큰 일본, 즉 대륙으로 진출해야 한다며 수도를 경성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이런 류의 주장은 허무맹랑해보이며 말도 되지 않는 얘기라 치부해 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해양, 지리, 지질, 역사, 풍속, 문화, 군사, 일본 및 국제 정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나아가 한반도와 만주 침략의 마스터 플랜까지 제시하고 있다. 


도요카와 젠요는 체계적으로 책을 구성하였다. 먼저 일본이 할 일이 동양 평화의 보전이라 주장하면서 바다 쪽과 육지 쪽의 생명선 즉, 임시 경계선을 긋는 작업을 한다. '극동을 지배하는 자가 태평양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면서 극동이야말로 일본이 취해야 할 요충지라고 설파한다. 극동의 자급권, 자위권, 문화권을 풀어내면서 그 통합 지점을 조선 반도라고 설명한다. 


결국 그가 주장하는 것은 대륙으로의 진출이다. 하지만 대륙이나 일본 본토에 수도가 위치해 있는 것은 한 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불안전하다고 하면서, 그 중간에 있는 조선 반도의 경성(서울)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어김없이 '진구 황후의 신라 정벌'이야기가 나온다. 임나 일본부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알려진 사실과 다르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취하고 명나라를 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당시의 현실에서 경제적인 이유로도 대륙으로 진출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일본·만주 경제 블록을 촉진할 것을 주장하면서 미국, 소비에트, 영국, 구주 대륙 경제 블록을 예로 들고 있다. 작금의 FTA가 상호 호혜를 내세우는 듯 하면서도 본질은 시장 논리에 따라 강자가 약자를 집어 삼키는 블록형 경제정책이라고 할 때,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주장한 '경성천도'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일본의 수도 도쿄의 위치와 지반, 국방 문제 등이었다. 영국의 수도 런던과는 달리 도쿄가 일본 본토 중에서도 바다 쪽에 치우쳐 있어서 적(미국)의 침입에 취약하다는 점, 도쿄가 산맥이 만나는 곳의 바깥쪽에 있는 간토 평야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어 지반이 화산재의 흙으로 덮여 있다는 점을 들면서 이 모든 면을 만족 시킬 수 있는 곳이 조선 반도의 경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경성천도는 천황 중심의 일본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경성은 고대의 로마이며 현대의 가마쿠라이다. 정치상, 경제상, 국방상 이곳으로 천도 하여 나쁠 것이 없다. 경성으로 근거지를 옮겨 무를 연마하고, 문을 새 일본의 커다란 깃발로 삼는다면 그 누가 따르지 않겠는가.


<경성천도> 결론 238쪽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는 또 이렇게도 말하고 있다. 


조선인은 4천년 동안 조선반도에 거주해 왔을 뿐 지금까지 이곳을 지배했던 적이 없다. 


일본 극우주의자의 조선에 대한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문구라 하겠다. 


몇 달 전 일본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 확정 지으면서 우리나라와 독도, 중국과 센카쿠 열도에 대해 분쟁을 계속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역사의 반복성'이다. 일본은 역사의 반복성을 충실히 이행해 나가고 있는 듯 하다. 식민 족쇄를 채우려 했던 저들의 교묘한 책동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부재하다면 역사를 대하는 현재의 의미는 저감될 우려가 있다.


80년이 지난 허무맹랑한 주장이라 치부할지라도, 이런 음모가 실제 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할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지금도 해박하고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누군가가 계획을 획책하고 있을지 모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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