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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디센던트> 무언가를 잃을 때 반드시 찾아오는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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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디센던트>


<디센던트> ⓒ폭스 서치라이트


일기장을 들춰보다가 증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던 12살 어느 날과 마주쳤다. 일기를 읽어보니 가관도 아니다. 글 재주는 둘째 치고, 증조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재밌다니? 어린 나에게 집안 어른의 장례는 재밌게 다가왔나 보다.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친척들이 모두 다 모이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호상(好喪)이셨기 때문에,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었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첫 번째 집안 어른 장례식이다. 


작년에는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몇 달 간의 투병 끝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 하셨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친척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좋았고, 왠지 모르게 우리 가족들 사이가 전에 없이 밀착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하염없이 우시는 어머니와 어머니 형제 분들의 모습을 보니 알 수 없는 가족애까지 느끼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께서 남기신 유산(遺産) 아닌 유산이었다. 


<어바웃 슈미트>,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또 하나의 명작 <디센던트>는 ‘자손’ 또는 ‘유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주인공 맷 킹(조지 클루니 분)은 하와이에서 제일가는 땅을 소유한 가문의 상속자이다. 법률 변호사이기도 그는, 이 땅을 어떻게 하면 잘 팔았다는 말을 들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 땅을 파는 건 오로지 그의 결정에 의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그의 수많은 친척들과 함께 할 것이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모터 보트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쳐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는다. 평소에는 너무나 바빠서 가족들을 잘 돌보지 못하는 그이지만, 아내가 사고를 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곁을 지켜야만 한다. 그에게는 망나니 같이 행동하는 두 딸이 있는데, 그의 잘못이 크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딸들과 함께 아내의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들은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까?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영화는 이처럼 두 개의 큰 맥락으로 진행된다. 땅을 떠나보내면서 돈벼락을 맞고, 아내를 떠나보내면서 가족이 재결합하고.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150년 간 이어 내려온 땅을, 자신들이 그 땅을 위해서 한 일은 한 가지도 없으면서 자신들의 이익 만을 위해 팔려고 하는 것이다. 그를 아는 다른 모든 주민들은 그 일을 반대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는 대신 얻을 수 있는 건, 리조트나 호텔 따위 뿐이다. 


또 하나, 아내를 떠나보내는 건 더더욱 어렵다. 특히 10년 만에 아이들과 붙어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불안하고 불편하고 두렵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 첫째 딸에게서 황당무계하고 어이없는 소식을 듣게 된다. 너무나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그이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미안했다.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그는 그날로 아내가 바람 핀 상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에 딸들이 동행하면서, 비로소 그들은 가족이 된다. 아이러니컬한 상황이지만, 그의 아내가 남기고 간 유산 아닌 유산은 한편으로는 어처구니없으면서 한편으로는 고맙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이처럼 아이러니컬한 상황은 ‘하와이’라는 배경 자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하와이를 생각할 때 ‘지상 낙원’이 그려질 것이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근심 걱정 없는 삶을 살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미시적으로 접근해보면 보통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손쉽게 포착할 수 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해체와 거기에서 파생된 불륜, 사소한 사고에 의한 죽음, 속물근성에 찌든 사람들의 모습, 재개발에 관련된 반응들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상 낙원’에서 벌어지는 매우 ‘지상’적인 느낌의 일들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온다. 


<디센던트>의 한 장면. ⓒ폭스 서치라이트


사실 영화의 결말은 이미 나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아내의 죽음 덕분에 맷 킹의 가족은 재결합할 수 있었다. 맷 킹은 남은 두 딸에게 헌신적인 아빠가 될 것이었고, 망나니 같던 두 딸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다시 들어와 잘 자랄 것이었다. 


또한 그는 조상들이 남긴 유산인 땅은 결국 팔지 않을 것이었다. 아내가 남기고 간 유산인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은 맷 킹이, 조상들의 유산을 팔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가족들의 추억이 새겨져 있는 그곳을. 비록 수많은 친척들의 압박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의 삶은 아내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를 잃어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고, 감정이 될 수도 있다. 그때 슬픔과 허무는 우리를 사정 없이 덮쳐올 것이다. 그런데 그때 동시에 찾아오는 것이 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으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이다. 그 변화를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승화 시키는 것이 어떨까. 이 변화의 컨트롤을 위해 굳이 연습을 하거나 계획을 세워둘 필요는 없다. 잃게 되는 무언가가 남기고 갈 유산이 변화를 이끌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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