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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예찬> 문학만큼 중요한 번역, 작가와 같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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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번역 예찬>


<번역 예찬> ⓒ현암사

2년 전 출판계에 파장을 일으켰던 사건이 발생했었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강신주' 철학자의 책 <김수영을 위하여>(천년의상상)의 표지때문이었다. 표지에 버젓이 편집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 일반인의 눈으로 보기엔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였지만, 사실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본래 편집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저자의 뒤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전통이 있다. 그런데 저자 강신주가 반드시 편집자를 저자와 동일하게 위치시켜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이었다. 편집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이 사건은, 책 출간에 있어 편집자의 위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책 출간에 있어서 편집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번역가이다. (디자이너나 영업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만, 책 출간에 있어서 저자를 제외하고는 편집자와 번역자만큼 많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특히 국외서를 번역할 시 번역가가 기획은 물론이고 편집까지 수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편집자와 버금갈 정도로 책 출간에 있어 번역가가 차지하는 위상은 형편없다. 물론 번역가의 이름은 항상 저자와 동일한 위치에서 소개되고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번역자가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 그 능력과 영향력에 비해 형편없다는 것이다. 


번역가는 엄연한 '작가'


현역 최고의 번역가로 칭송받는 '이디스 그로스먼'은 <번역 예찬>(현암사)을 통해 이런 번역가의 입장을 전적으로 대변하며 나아가 번역을 옹호하며 예찬하고 있다. 먼저 번역가에 대한 옹호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번역가는 단순히 다른 나라 말을 자국어로 번역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작가'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라고 칭하기 위해서는 '창작'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번역을 창작이라고 칭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저자는 시원하게 대답한다. 번역가가 하는 번역은 작가가 하는 창작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이다. 이제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번역에 대한 새로운 지평이다. 


"언어란, 그게 무엇이든 비언어적 세계에 대한 번역이며, 한 언어의 기호와 구절은 다른 기호와 구절을 번역한 것입니다... 문학은 하나의 번역 과정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상상하는 내용을 변형하고 구체화해서 문학적 가공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말을 외국어로 재현하려는 번역가의 분투는 사실상 작가가 처음 비언어적 실체를 언어로 옮기려 기울인 노력의 연장입니다."

(본문 중에서)


작가는 자신의 머릿속에 넘나드는 비언어적 기호와 구절을 '번역'한 것이고, 번역가는 그런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번역'을 한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를 단적으로 작가의 원문을 '제1의 번역문'으로, 번역가의 번역문을 '제2의 번역문'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독창적인 것은 없다라고 단언하는 저자의 말은 얼핏 작가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거기에 어떤 절대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러며 저자는 번역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바로 '번역 직역론'에 대한 비판이다. 언어에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 직역하면 거기에 반드시 이질적인 면이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번역가는 최대한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해야 하겠지만, 그 충실성의 기준이 결코 직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즉, 원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와 원문만이 가지는 맛을 자국어에 맞게 번역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양 언어에 속하는 모든 것을 완벽히 꿰뚫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는 번역의 중요성으로 이어진다.


인간으로서 꼭 필요한 '문학' 그리고 '번역'


저자는 '번역' 자체에 대한 예찬을 이어간다. 사실 이 부분이 저자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인 듯하다. 저자의 생각을 들여다보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자. 만약 번역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했을까? 얼핏 생각해봐도, 깊이 생각해봐도, 골머리를 썩이며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번역이 없는 삶을 말이다. 당장에라도 주위를 둘러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나에게 남아 있을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저자는 이런 생각과 비슷한 이유로 번역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문학적 생각, 통찰, 직관의 자유롭고 필수적인 교류가 번역을 통해서 활성화되고 촉진된다는 것이다. 또한 번역은 문학을 통해 다른 사회, 다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탐구하는 능력을 키워주어, 잠시나마 다른 삶을 살게 해준다고 말한다. 절대적이지 않은 이 사회에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가장 효과적이며 필수적인 방법이 바로 '번역'인 것이다. 


"문학이 중요한 것과 같은 이유와 측면에서 번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의식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의 예술적 충동과 예술에 대한 욕구는 억누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거의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우리를 떠난 적이 없으며, 문화나 관습, 기대치에는 큰 변화가 있을지언정 여러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 어디에든 존재합니다. 문학이 있는 곳에 번역이 있습니다. 문학과 번역은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와 같아 절대로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본문 중에서)


번역에 대한 필수 참고서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생각에 동조를 하게 된다면 또는 동조를 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책을 대하는 눈이 많이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나아가 일상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저자는 문학과 번역이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라고 표현했지만, 삶과 번역이야말로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출판계 사람이라면, 그리고 번역가라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수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번역과 번역가에 대해 갖고 있는 시선이 아예 형성되어 있지 않다. 번역에 대해 말할 때, 오직 '오역'으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비록 굉장히 중요하지만 굉장히 편협한 면에 불과한 '교정교열'로만 편집자의 편집을 판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번역을 판단함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원작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얼마나 자국에 맞게 번역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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