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헌정사상 제일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제정법 3가지 중 마지막 '권리장전'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청교도 혁명(1642~1651)에서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의회파가 승리 한 후, 찰스 1세는 처형당했고 찰스 2세는 추방당합니다. 이후 올리버 크롬웰이 사망하자  왕정복고가 이루어져 찰스 2세가 돌아옵니다. 하지만 그는 적장자를 두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그의 아우인 요크 공 제임스 2세(1633~1701)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는 가톨릭교도였기 때문에, 찰스 2세 시절에 의회파의 후신에 의해 무수한 압력과 암살 시도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잠재우고 확실한 왕위를 물려줄 수 있었죠. 이에 제임스 2세는 확고한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제임스 2세



이런 탄탄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2세는 곧 형편없이 무너지게 되고 맙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그가 극단적인 가톨릭 신봉자이자 절대 왕권 신봉자였기 때문이죠. 그에게는 정치적 감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국가의 중요한 법체계를 하나씩 하나씩 가톨릭교에게 유리하게 세우려 합니다. 이는 궁정당의 후신인 토리파가 보기에도 너무한 처사였죠. 당연히 반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임스 2세는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오랫동안 적정자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대에서만 계속될 것이 분명한 처사들을 극렬히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1688년 6월에 왕자가 태어납니다. 가톨릭교도로 양육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가톨릭교도 국왕의 치세가 계속될 것이었던 거죠. 상황이 급변하자 토리파(궁정파의 후신)와 휘그파(의회파의 후신)와 종교계가 손을 잡고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침공하다 윌리엄이 잉글랜드를 침공하다 메리 2세



그건 바로 제임스 2세의 딸 메리의 남편인 네덜란드 오렌지공 윌리엄을 불러들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밀사를 통해 윌리엄으로 하여금 잉글랜드를 침공하게 하였고, 윌리엄은 이를 따릅니다. 이에 제임스 2세는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프랑스로 도망가고 말죠. 명예혁명의 전말입니다. 


1689년 1월, 사태 수습을 위해 소집된 공회에서는 논의 끝에 윌리엄과 메리에게 공동으로 왕권을 부여하고 국정을 윌리엄에게 맡기게 됩니다. 이들이 곧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입니다. 그리고 잉글랜드 인민의 권리를 열거한 '권리의 선언'을 채택하게 되죠.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 이 선언을 법으로 제정합니다. 잉글랜드 인민의 권리와 특권을 선언하고 왕위계승을 법으로 규정한 것이죠. 이것이 바로 '권리장전'입니다. 



권리장전 원문



'권리장전'은 입법권과 징세권과 군사권이 의회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국왕으로 하여금 의회에서 제정된 법의 지배를 받도록 규정했습니다. 즉, '입법군주제'의 기초를 닦은 것이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의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법률의 적용, 면제, 집행, 정지를 금지한다.

의회의 동의없는 과세, 평시의 상비군을 금지한다. 

선거의 자유, 의회의 발언의 자유, 국민 청원권을 보장한다. 

국민의 청원권, 의원의 면책 특권, 신체의 자유에 관한 규정을 준수한다. 

로마 가톨릭 교도는 왕위 계승자에서 배제시킨다.  


블로그 이미지

singenv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