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는데요. 그 직접적인 사건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세자책봉이고, 다른 하나는 사병혁파입니다. 이번에는 세자책봉 사건에 대해 알아봅니다. 그는 분명 [조선경국전]을 통해, '옛날의 선왕(先王)은 반드시 맏아들로써 세자를 세웠으니 왕위계승 분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하였는데요.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성계(조선 태조)에게는 본처 한씨와 후처 강씨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한씨 소생이 다섯 왕자, 강씨가 두 왕자를 두고 있었죠. 그런데 이성계는 후처 소생의 두 왕자 가운데에서도 두 번째 왕자인 방석을 사랑하였습니다. 급기야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고, 정도전을 방석의 스승으로 임명해 교육케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본처 소생의 이방원이 크게 자극을 받은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이성계의 왕자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하였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가장 큰 공을 세웠던 것입니다. 이성계의 방석 사랑과 정도전의 방석 보살핌이 도저히 납득될 수 없었죠.
나라의 근본(세자)을 정함
세자(世子)는 천하 국가의 근본이다. 옛날의 선왕(先王)은 반드시 맏아들로써 세자를 세웠으니 왕위계승 분쟁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반드시 어진 아들로써 세자를 세우기도 하였으니 덕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천하 국가를 바르게 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세자의 교양이 부족하면 덕 있는 왕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왕이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기 어렵다. 이를 염려하여 나이 많고 원숙한 학자와 덕행이 높은 현인을 택하여 세자의 스승으로 삼고, 행실이 단정한 선비를 세자의 요속(僚屬)으로 삼아서 아침저녁으로 가르치고 권면하였다. 세자의 언어와 행동을 바르게 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니 그를 훈도하고 함양함이 이렇듯 지극하였다. 선왕은 세자에 대하여 다만 위(位)를 정하여 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그를 가르침이 이와 같았다. 그러나 간혹 기술을 가진 인사를 초빙하여 헛되이 사장(詞章)의 학문을 배우는 경우가 있어서, 배우고 익힌 것이 도리어 본심을 어지럽히는 도구가 되었다. 심한 경우에는 참소하고 아첨하며 알랑대는 무리들만을 신임하기도 하고, 여인들과의 유희나 한가로운 놀이만을 좋아하여 마침내는 세자의 위를 보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 어찌 애석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전하께서는 즉위한 직후에 윤음(綸音)을 내리시어 먼저 동궁(東宮)의 위를 바르게 하고 서연관(書筵官)을 설치하여, 문하좌시중(門下左侍中) 조준(趙浚),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남재(南在), 첨서중추원사(簽書中樞院事) 정총(鄭摠)이 학업이 높아 세자를 교육하고 권면할 만하다고 믿어서 세자의 사부(師傅)와 빈객(賓客)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신(臣) 또한 불민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사(貳師)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신은 비록 학문이 엉성하고 깊지 못하여 세자의 타고난 훌륭한 덕을 제대로 보필하기는 어려우나 마음속으로는 항상 세자를 잊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의 동궁은 자질이 뛰어나고 성품이 온화하고 문아하며,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부지런히 서연에 참여하여 연구와 토론을 게을리하지 아니하고 있으니, 앞으로 일취월장하여 반드시 그 학문이 밝게 빛날 날이 올 것으로 믿는다. 세자의 위를 바르게 하여 나라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올래 클래식스 <조선경국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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