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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어바웃 타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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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바웃 타임>


영화 <어바웃 타임> ⓒ유니버셜



50세의 나이로 교수 자리에서 은퇴해 소일거리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버지, 무뚝뚝하고 진지하기만 하지만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는 어머니, 항상 반듯한 정장 차림이지만 뜬금없고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을 수시로 하는 삼촌, 말괄량이다 못해 너무나도 천방지축인 여동생, 그리고 키는 멀대 같이 크고 말랐으며 모태솔로에 지극히 보통인 그런데 어딘지 찌질한 면이 있는 나. 


내가 21살이 되어 성년으로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으려 할 때, 아버지가 따로 보자고 하신다. 그리고 친절하게 대해주시기까지 한다. 아무래도 성년이 된 나에게 덕담을 곁들인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 거겠지?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우리 가문 남자들은 성년이 되면서 특별한 능력이 생기는데, 바로 시간 여행 능력이라는 것이 아닌가.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을 감은 뒤 돌아가고자 하는 때를 생각하면 된다. 과거로만 여행이 가능하고, 여행 중의 기억들이 모두 생생할 것이며, 내가 시간 여행을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들까지 리셋이 된다는 것이었다. 시험 삼아 한 번 해봤는데 정말 되는 것이 아닌가? 내 인생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여자친구를 만들 것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두 주먹을 꼭 쥐고 눈을 감은 뒤 돌아가고자 하는 때를 생각하면 시간 여행이 실현된다. ⓒ유니버셜



로맨틱 코미디의 황제가 돌아오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프롤로그 스토리이다. 전형적인 듯한 로맨틱 코미디의 스토리와 이제는 너무나도 식상한 소재가 되어 버린 시간 여행’, 거기에 그리고 유명하지 않은 남자 주인공까지. 할리우드가 아닌 영국 발의 이 영화에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 믿음이 가는 이유는 정확히 10년 전 개봉해 가히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러브 액츄얼리>의 리차드 커티스 감독 작품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리차드 커티스 감독은 일찍이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각본을 맡은 바 있다. 이들 작품 모두 로맨틱 코미디의 한 획을 그은 작품들로, 그를 가히 로맨틱 코미디의 황제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어바웃 타임>도 역시나 연출 뿐만 아니라 각본까지 도맡았다.

 

<러브 액츄얼리>의 경우, 개봉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최근에 재개봉하는 등 여전히 사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먼저 다른 점들을 재처 두고 크리스마스 시즌만을 노린 점이 잘 먹혔다. , 너무 많은 걸 넣으려 하지 않고 선택과 집중을 했다는 뜻이다. 반면 19명의 주인공(10 커플)을 등장시키는 옴니버스 형식이기 때문에, 캐스팅과 스토리에서는 많은 걸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본 어떤 관객도 최소한 한 커플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신들린 듯한 공감과 웃음, 그리고 재미


<어바웃 타임><러브 액츄얼리>의 채취가 상당히 많이 베 있는 영화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시즌만을 노리지 않았고, 옴니버스 형식을 차용하지도 않았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과 분위기, 그리고 감독의 시간에 대한 생각이 비슷하게 드러난다.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영화는 시간 여행이 가능한 팀(돔놀 글리슨 분)의 이야기이다. 그는 시간 여행으로 가장 이루고 싶은 게 여자친구 만들기였다. 그래서 첫 눈에 반한 메리(레이첼 맥아담스 분)를 차지하기 위해 온갖 고군분투를 다한다. 주로 시간 여행에 따른 고군분투인데, 그건 그의 착한지 오지랖이지 생각없음인지 모를 행동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껏 메리에게 호감을 사 좋은 관계로 진행되고 있을 찰나에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메리가 팀을 모르는 상황으로 돌아가게 되곤 했다. 그럼에도 그에겐 시간 여행이란 절대적 무기가 있었기에 결국에는 메리와 사귀고 결혼하고 아기를 낳기까지 한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팀은 결국 첫 눈에 반한 메리와의 메리에 성공한다. ⓒ유니버셜


 

, 이 영화의 거의 후반부까지의 스토리는 이처럼 아주 예측가능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지루하거나 재미없거나 심지어 속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바로 주인공 팀에 있다. 그의 연기가 출중한 건지 대사가 출중한 건지 상황 연출이 출중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너무나도 재미있다. 그것도 공감하면서 웃는 재미. 주로 여성들에게서 그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팀이 순진하면서도 찌질하게 메리를 대하는 모습에서 공감의 웃음이 나오고, 그가 시간 여행을 통해서 과거로 가 그 모습을 억지로 버리고 능숙하게 대하는 모습에 코믹스러움을 대할 때의 웃음이 나온다.

 

감동 코드도 놓치지 않는 센스


반면 감동 코드 또한 놓치지 않는다. 팀은 수많은 시간 여행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혹은 기억에 없는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지만 말이다. 그의 아버지(빌 나이 분)는 잘 알고 있다. 시간 여행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다른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그 결과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는 사실을.

 

대신 그는 시간으로도 살 수 없는 사랑의 참맛을 알게 된다. 깨닫고 난 후 그에게 시간 여행은 그 사랑을 위한 수단이 되었을 뿐이다. 너무 힘들고 지치고 형편없는 것만 같은 하루를 온전히 지내고 난 후, 시간 여행을 통해 다시금 똑같은 하루를 보낼 때는 완연히 다른 모습을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미래를 전부 알고 있는 이의 여유와도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감동 코드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음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음악이 없었다면 아주 밋밋한 화면과 스토리가 되었을 텐데, 음악 덕분에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음악이 과했다면 남은 것이 음악 밖에 없었을 테지만, 그 또한 잘 캐치해냈다. 음악에 먹히지 않고 음악을 잘 소화해냈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 팀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 팀과 함께한 시간을 선택한다. ⓒ유니버셜


 

만약 시간 여행을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을 쟁취하고 싶은가? 언제로 돌아가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어디로 돌아가 어떤 행동을 저지하고나 하고자 할 것인가? 영화에서 팀은 여자친구를 만들어 사랑을 쟁취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팀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들인 팀과 여유롭게 산책하는 옛날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는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이것 한 가지도 잘 안다. 지금 이 순간은 반드시 과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굳이 과거로 돌아가서 무엇을 바꾸려고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바로 지금,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행동에 옮기면 되지 않겠는가?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그 생각을 인지한 채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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