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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혁명전사'가 된 소년,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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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아프리카는 세계에서 아시아 다음으로 큰 대륙이자 세계 최고의 자원의 보고다. 이를 알았던 서구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일찍이 아프리카 전 대륙을 케잌 자르듯 분할 통치했다. 20세기 들어서 사실상 모든 나라가 독립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몇몇 나라들은 내전에 휩싸였다. 소말리아·수단·콩고·에티오피아·시에라리온 등... 차라리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를 찾는 게 쉬울 정도다. 

그 중에서도 시에라리온 내전은 애초의 '독재체제'에 반대하는 혁명연합전선(RUF)과 정부군의 전쟁이 점차 '다이아몬드 광산'의 이권을 차지하는 전쟁으로 변해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의 사망은 물론이고,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끌려가 고통을 받았다. 소년들은 잔인한 소년병이 되고, 어른 남자는 광산으로 끌려갔으며, 어른 여자는 노리개가 됐다. 그밖에 사람들은 무차별 살인을 당했다. 시에라리온 내전의 간략한 브리핑이자,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배경이다. 

피의 다이아몬드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1999년 내전이 한창인 시에라리온의 어느 마을에서, 솔로몬 밴디(디몬 하운수 분)가 아들과 함께 한적한 시간을 즐기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곧이어 혁명연합전선(아래 RUF) 일당이 마을을 습격한다. 밴디는 가족들을 살려 도망쳐 보내지만, 자신은 잡혀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우연치 않게 어마어마하게 큰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이를 땅에 묻어 숨긴다. RUF 사령관에게 들키려는 찰나, 정부군의 습격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이제 밴디는 가족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발견한 피의 다이아몬드를 다시 찾아와야 했다.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일급 용병 출신으로, 다이아몬드 브로커다. RUF에게 무기를 대주고 다이아몬드를 밀수하는 것이다. 그는 다이아몬드를 밀수하다가 걸려서 감옥에 갇히게 됐을 때 밴디가 엄청난 다이아몬드를 숨겨놨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에게 같이 찾으러 갈 것을 제안한다. 대신 가족들을 찾아주겠다고.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내(백인)가 없이는 넌(흑인)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그는 이 지긋지긋한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위해 그 피의 다이아몬드가 필요했다. 또한 아처는 과거 몸담았던 용병 집단의 우두머리와 거래했는데, 그만 밀수 도중에 다이아몬드를 압수당하고 말았으니 그 우두머리는 대신 그 피의 다이아몬드를 가져오라고 한 것이다. 

영화는 아프리카 그리고 시에라리온에 대한 거시적 접근과 솔로몬 밴디·대니 아처에 대한 미시적 접근을 자유자재로 펼치며 흥미롭게 진행된다.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매개체가 바로 '피의 다이아몬드'다. 수많은 사람들을 피 흘리게 한 다이아몬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쟁취하려 하고 지키려고 하는 다이아몬드. 기자 역할로 나오는 여주인공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 분)의 말과 행동·사진을 통해 그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생산된 다이아몬드는 세계로 팔려나가 가공돼 엄청나게 비싼 돈으로 판매되는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속사정을 취재하는 그녀의 속마음 또한 타들어간다. 

이런 속사정이 있는 물품은 비단 다이아몬드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표적으로 '커피'가 있다. 커피 원두는 대부분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 가난한 지역에서 생산된다. 세계 유수의 커피 브랜드들은 그곳에 마치 과거 노예 농장처럼 거대한 농장을 꾸리고 상상도 안 되는 싼값에 그곳 사람들을 이용해 원두를 채취한다. 그리고 엄청난 가격을 매겨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영화가 던지는 주요한 메시지 가운데 하나다. 

This is Africa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가족을 되찾기 위해서 다이아몬드를 찾아야 하는 밴디, 거래를 위해서 그리고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위해서 다이아몬드를 찾아야 하는 아처, 그리고 이 모든 실상을 카메라에 담고 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하는 매디. 이 셋은 얼떨결에 함께 모험 아닌 모험을 떠난다. 먼저 밴디의 가족들을 찾아주고, 이후 밴디와 아처만이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간다. 하지만 밴디는 RUF에 잡혀간 아들을 찾아야 했다. 죽어도 꼭 찾아야겠다는 밴디를 보고 아처는 마지못해 이를 수락한다.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한 장면. ⓒ 워너 브라더스

가는 도중 밴디와 아들을 발견하지만 아들은 이미 혁명전사가 돼 있다. 그로 인해 밴디는 그만 RUF에게 잡히고 만다. 영화는 상당 부분을 할애해서 소년들이 어떻게 혁명전사라 칭하는 무자비한 소년병이 돼가는지 보여준다. 

그들이 외치는 구호란 '민족해방'이지만, 실상의 목적은 다이아몬드를 통해 '아프리카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반군 사령관의 사리사욕에 불과하다. 훈련을 빙자한 폭력으로 인한 복종과 '혁명전사'란 미명하에 덜 성숙한 소년들의 폭력성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은 무서울 것이 없었던 것이다. 

어린 소년들이 마을을 초토화시키고 불에 태워진 철물을 둘러싸 노래를 부르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는 모습을 보니, 소설 <파리대왕>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어린 나이에 볼 수 있는 극한의 비극을 맛보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이것이 아프리카의 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처가 대니에게 고백하는 자신의 과거 또한 아프리카의 현실 그 자체다. 그는 백인이지만 아프리카 태생인데, 어릴 때 어머니는 강간을 당한 후 죽임을 당했고 아버지는 테러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그는 용병단에 들어가 수많은 반군을 죽였는데, 지금은 반군에게 무기를 대주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화 곳곳에서 여러 사람이 툭툭 던지는 대사인 'T.I.A' 즉, 'This is Africa'. 이곳은 아프리카이니 어떤 것이든 할 수 있고 당할 수 있다는 말일 게다. 이 한마디에 포함돼 있는 그 가혹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처가 하는 말을 들어본다. 

"가끔은 궁금해져. 우리가 하는 일을 신이 용서하실지... 하지만 금세 깨닫곤 하지... 신이 오래 전에 이곳을 떠났다는 걸..."

한편, 아처는 사전에 용병단에게 반군에 대한 폭격을 요청한 바 있어 폭격 시간이 다가오자 초조해 한다. 이윽고 폭격이 시작되고 그는 아수라장이 된 반군 집결지에서 밴디의 아들을 구해낸다. 그리고 이제는 아처와 밴디·밴디의 아들·용병단의 우두머리와 부하들이 피의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간다. 그곳에서 아처와 밴디는 솜씨 좋게 용병단을 무찌르고 빠져 나가려 한다. 하지만 아처는 총에 맞고 말았다. 미리 요청해둔 경비행기의 착륙 지점이 코앞이었지만 아처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밴디와 그의 아들만이 탈출에 성공한다. 무사히 탈출한 그들은 매디의 도움을 받아 다이아몬드를 팔게 됐고,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영화가 끝나며 2003년부터 '킴벌리 협약(Kimberly Process)'가 발효됐다는 자막이 나온다. 이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생산과 유통을 막기 위한 세계 각국의 자정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는 그 지대한 역할을 한 사람으로 밴디와 매디 그리고 아처가 지목된 것이다. 

그 누구보다도 지대한 역할을 한 아처가 비록 백인이지만 아프리카 태생으로 나온 것은 영화의 신뢰감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흔하디흔한 백인 우월주의 또는 영웅주의의 영화에서 한 발자국 물러난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감독 에드워즈 즈윅의 <라스트 사무라이>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오마이뉴스" 2013.4.22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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