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립영화의 힘

<가시꽃>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한 남자의 잔혹한 속죄

반응형




<가시꽃> ⓒDK FILM


[리뷰] 독립영화 <가시꽃>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집단 성폭행에 가담했던 성공(남연우 분). 그는 고등학생 때에도,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후에도 여전히 어리숙하고 찌질하기까지 하다. 정황상 그는 주동자들의 폭력에 의해 집단 성폭행에 어쩔 수 없이 가담했지만, 실제 행동에 옮겼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 거라 추측된다. 주인공인 성공이 분명 가해자이지만, 한편으로 피해자라는 걸 명확히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이 영화 <가시꽃>의 주제와도 이어진다.

 

<가시꽃>의 한 장면. ⓒDK FILM


사건 이후 10년의 시간이 흘러, 성공은 의류공장에서 착실히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어리숙한 성격 때문에, 여러 가지 피해를 보곤 한다. 10년 전 성폭행 주동자 중 한 명인 친구와는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다. 결정적으로 10년 전 사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매일 같이 악몽을 꾸며 스스로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왜 성공은 악몽을 꾸고 그 사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분명 성폭행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또한 그와 같이 어리숙하고 착해 보이는 이가 그런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는 주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는 말인가? 이 부분이 중요한지, 영화가 계속되어도 좀처럼 사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성공은 교회에 나가게 된다. 교회에 나가서 진실로 하느님을 믿으면 자신이 지은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가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인 장미(양조아 분)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바로 10년 전 성공을 비롯한 4명의 고등학생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었다.

 

처음에 성공은 이를 알고 혼란에 빠지지만, 점차 그녀를 향해 마음을 열고 그녀를 좋아하게 되고 그녀를 지켜주려는 생각을 굳게 다짐한다. 그녀를 향한 속죄의 표시였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된 원인(성공), 원인의 결과를 보살펴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매개체가 바로 교회이고 하느님()이다.


<가시꽃>의 한 장면 ⓒDK FILM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을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한다. 또한 하느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다고 한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감옥에 들어가서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새롭게 태어났다는 소식이 많이 들려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감하기 짝이 없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평생 죄를 짓지 않고 산 사람이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경우와,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는 사람이 하느님을 믿게 된 경우. 이 딜레마를 과연 누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 영화는 이 부분도 살짝 건드리고 있는 것 같다.

 

성공은 친구를 찾아가 교회를 다니라고 말한다. 그래야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그의 말과 행동은 지극한 순수함에서 나온다. 그것이 굉장히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발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더욱이 성공의 친구이자 10년 전 집단 성폭행의 주동자 중 한 명은 그래서 이제 와서 어쩌라고?”라며 오히려 성공을 타박하기까지 한다. 성공의 말과 행동은 이기적이지만, 친구의 말과 행동은 파렴치하기 짝이 없다. 성공은 이 간극에서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혼자만 죄를 씻으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성공은 교회에서 청년부에 발을 들여놓고 장미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바닷가로 MT를 가게 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진실게임 시간. 평소엔 아무것도 아닌 단순히 재미 위주의 시간이지만,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가시꽃>의 한 장면 ⓒDK FILM


같이 가게 된 교회 친구 중 한명이 과거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자, 장미도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사실을 털어놓으려 한다. 10년 전 성폭행을 당한 후 자살을 하려 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차마 성폭행을 당한 사실은 털어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을 털어놓으며 극도의 분노를 표출한다. ‘그 자식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이었다. 그 극도의 분노는 성공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긴다. 그리고 성공은 그 즉시 자리에서 빠져 나와, 단죄를 하기 위해 주동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기에 이른다.

 

성공이 주동자들에게 묻는 말은 단순하다. “네가 한 짓을 알지? 미안해, 안 미안해?” 3명 모두 미안하지 않으며, 이제 와서 어쩌라는 투의 말을 건넨다. 이에 성공은 참지 못하고, 그들을 죽인다. 그리고 결국 자신도 죽인다. 어느새 성공을 좋아하게 된 장미는 갑자기 사라진 성공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으로 돌아간다.

 

장미가 다시 혼자가 되는 마지막 부분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의 축축하고 서늘한 땅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녀의 모습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성공의 단죄에만 시선이 쏠려 있다가 그녀에게로 시선이 옮겨가게끔 했다. 그 한 장면으로 균형을 잡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는 300만원의 초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웬만한 독립 영화라도 억 단위를 넘어가는 영화판에서, 이 정도의 예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액수이다. 그래서 꽉 짜인 스토리와 탄탄한 연기가 더욱 빛을 발한다. 다만 초반에 밀도 있게 짜인 스토리가 후반에 가서 폭발함과 동시에 느슨해진다는 느낌이 난다.

 

연기 부분에서는 나무랄 때가 없다. 특히 주인공 성공의 어리숙한 연기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여주인공 장미 또한 잔잔함을 유지한 채, 일상 속 고통스러운 순간과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용서받지 못한 자><파수꾼> 그리고 <명왕성>에 이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주인공의 선택이 자살로 귀결되는 부분이 안타까운 동시에 독립영화에서 하나의 트렌드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남은 사람의 슬픔 또는 공허함이 눈에 띈다. 아직까지는 이런 결말이 아쉬움으로 다가오진 않지만, 계속된다면 조금 식상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