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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언어 자서전 <문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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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문맹>


<문맹> 표지 ⓒ한겨레출판



살아생전 스위스에 거주하며 프랑스어로 창작활동을 했던 헝가리인 소설가 아고타 크리스토프. 우리나라엔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로 번역된 세 권의 시리즈 <비밀 노트> <타인의 증거> <50년간의 고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이 세 권을 포함 9권의 책을 썼는데, 우리나라엔 이 세 권을 포함한 5권만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그녀 자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바, 그녀가 쓴 작품들에 그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삶이. 그녀는 어쩌다가 헝가리에서 스위스에 와 살게 되었고, 왜 프랑스어로 창작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그녀는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가. 코스다운 코스를 밟아보지 못했을 것 같지 않은가. 


2004년 그녀는 자전적 소설 <문맹>을 내놓았다. 2000년대 들어 처음 내놓은 작품의 주인공으로 자신을 택한 것이다. 70대에 들어선 그녀가 온전한 작품 속에 자신을 투영하는 게 아닌, 자신이 자신임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 이 작품은 아주 짧고 단순명료하지만, 그녀의 여타 작품들처럼 처절하다. 그래서 인상 깊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삶과 언어


그녀는 1935년에 태어나 전쟁이 막 시작될 무렵인 네 살 때부터 인쇄된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시작이다. 읽기는 말하기로 옮겨가고 말하기는 쓰기로 옮겨갔다. 그녀는 그녀가 지은 이야기를 말하는 걸 즐겼다. 열네 살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절대 침묵을 해야 하는 학습실로 간다. 그녀는 모든 것을 적고 계속 읽는다. 문장들이 태어난다. 


누구나와 같이 그녀에게도 당연히 태초에 하나의 언어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홉 살 때 인구의 4분의 1이 독일어를 쓰는 국경 도시로 이사를 했다. 1년 후 러시아 군인들이 헝가리를 점령했을 때 러시아어가 의무화되었다. 스물한 살 때는 혁명의 여파를 피해 정치적으로 연류된 남편과 4개월 된 딸을 데리고 헝가리를 떠나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이주했다. 우연히 정착하게 된 그곳 뇌샤텔은 프랑스어를 쓰는 도시이다. 


그녀는 프랑스어로 말한 지 30년도 더 되었고 글을 쓴 지는 20년도 더 되었지만, 여전히 실수를 하고 사전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서 프랑스어 또한 독일어와 러시아어처럼 적의 언어라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에겐 '읽고, 말하고, 쓰는' 행위가 가장 중요하기에,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스위스 뇌샤텔에서 프랑스어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 프랑스어로 말을 하지만 읽지는 못한다. 네 살부터 읽을 줄 알았던 그녀는 다시 문맹이 된 것이다. 그녀는 스물여섯의 나이에 학교를 다시 다니기 시작해 2년 후 훌륭한 성적으로 프랑스어 교육 수료증을 받는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다. 그저 최선을 다해 쓸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프랑스어로 글을 써 작가가 되게 한 유일한 방법이다. 그녀는 프랑스어를 택하지 않았다. 운명, 우연, 상황에 의해 그녀에게 주어진 언어이다. 그래서 프랑스어로 쓰는 건 영원한 도전이다. 


생존과 생존 이후 설계를 위한 문맹 탈출


아주 짧게 간추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인생을 훑어볼 수 있는 책, <문맹>이다.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라기보다 부제처럼 자전적 이야기에 가깝다. 그녀 인생 중심엔 '언어'가 있다. '언어 자서전'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헝가리어에서 독일어로 러시아어로 프랑스어로 의무화된 언어가 바뀌는 과정이 곧 인생이다. 


언어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 나의 실체를 구성하는 게 단순히 몸과 마음, 즉 육체와 정신이라고 한다면, 나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있는 게 '언어' 아니겠는가. 내가 하는 생각과 말과 글, 내가 보는 모든 것이 언어, 그것도 모국어에 기반한다. 다른 언어로 그러한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고 상상도 안 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처럼 언어가 특별한 사람일수록, 다른 무엇보다 언어와 가깝고 언어가 중요한 사람일수록, 다른 언어의 의무화는 치명적이다. 그녀에게 '문맹'이라는 건, '문맹'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건, 도전 너머 전쟁이다. 생존을 위해, 생존 이후 설계를 위해,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없는 때문인지, 그녀의 글엔 깊이가 없다. 단순하고 단편적이고 단조롭다. 하지만 그건 문체(文體)다. 문신(文神)에서는 깊이가 전해진다. 이면을 살피고 여백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곳에 어린 그녀의 전쟁 같은 언어와의 사투를 느껴야 한다. 느껴지지 않으면 당장 던져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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