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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차별의 반복'으로 구분하고 적을 만들고 군림한다, 영화 <디트로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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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디트로이트>


영화 <디트로이트>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지난 2010년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허트 로커>의 캐서린 비글로우가 아카데미 82년 역사상 처음으로 감독상을 차지하였는데, 인류 역사상 최고의 흥행 역사를 쓴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을 제치고 얻은 수확이었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오래 전 한때 영화감독으로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내로 더 명성이 높았다. 


그녀는 1981년에 장편 데뷔를 하여 지금까지 3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작 10여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대단한 과작인데, 90년대 초반 <폭풍 속으로>를 찍고 주가가 폭등한 뒤 내놓은 대작들을 연달아 실패하고 참으로 오랫동안 영화를 내놓지 못했던 이유도 있을 거다. 하지만 필모를 들여다보면, 그냥 과작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예전부터 선 굵은 액션과 압도적인 분위기를 세심하게 연출하는 데 정평이 나 있는 감독이다. 최근 들어서 그녀가 내놓은 영화들을 보면, 그런 면모에 있어서 현존 최고의 여성 감독 아니, 감독 반열에 올라섰다는 게 명백하다. 최근이라고 해봤자 2010년의 <허트 로커>와 2013년의 <제로 다크 시티>가 있을 뿐이지만. 


차별이 만연한 폭력 현장


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ㅁ. ⓒ㈜팝엔터테인먼트



그녀가 5년 만에 돌아왔다.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접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에 이어 그녀가 선택한 실화는 1967년 7월 닷새 동안 미국을 강타한 디트로이트 소요 사태이다. 영화 <디트로이트>는 이 사태의 전반을 들여다보기보다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사건 중 하나를 집중적으로 파고 든다. 명백한 메시지와 압도적인 연출.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1967년 7월 23일 시내 술집에서 흑인들 파티가 새벽까지 벌어졌다. 경찰이 무허가 술집 단속을 이유로 이곳을 덮쳐 손님 전원을 체포한다. 지나가는 흑인들이 모여들어 항의하자, 경찰차들은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누군가가 인근 가게를 턴다. 겉잡을 수 없을 폭동이 시작된다. 엄청난 수의 군까지 투입된다. 


7월 27일 밤, 알제 호텔에서 총성이 울린다. 어느 흑인 투숙객이 장난감 총을 쐈던 것. 근처에 있던 경찰과 군인들은 알제 호텔에서 쏜 저격수의 총성이라 단정 짓고 알제 호텔을 급습한다. 그렇게 잡혀온 6명의 남자 흑인과 2명의 여자 백인, 장난감 총을 쏜 장본인은 탈출하려다 죽임을 당한다. 


모두 백인 남자로 이루어진 경찰과 군인들은 본격적인 추궁에 들어간다. 그들은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저격수가 쏜 총의 정체를 밝혀내야만 했다. 반면 잡혀온 이들은 총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과 장난감 총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이들 뿐이다. 진짜 총은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근처 가게에서 경비로 일하는 흑인 한 명이 가세한다. 총의 정체를 둘러싸고, 죽음의 협박을 가하는 가해자와 사실을 말할 뿐인 피해자 그리고 그 모든 걸 보고만 목격자까지 함께 하는 차별이 만연한 폭력 현장이다. 


차별의 반복


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ㅁ. ⓒ㈜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흑인에게 행해지는 백인의 무차별하고 다양한 폭력을 통해, 차별의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기도 시기였거니와, 장소도 장소였고, 분위기도 분위기였다. 토끼굴에 불을 지펴 토끼로 하여금 뛰쳐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뛰쳐나온 토끼는 잡히지 않게 도망가거나 발악을 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일방적인 구도를 영화는 알제 모텔에서의 미시적 구도로 끌고 온다. 그곳에서 생각할 겨를 따위는 없다.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들은 그저 벽을 보고 백인 남자들의 일방적인 죽음에의 협박에 떨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내려진 차별의 철퇴는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또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백인 남자들이 전부인 경찰과 군인들은 그런 구도가 당연한 듯하다. 인간 대 인간이라는 구도 하에서 하물며 강력한 범죄용의자라고 해도, 심지어 범죄자라고 해도, 자신을 변호할 권리나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을진대 이건 막무가내다. 그들이 단지 흑인폭동이 한창인 곳에 있는 흑인들이라는 이유로, 그런 흑인들과 함께 놀고 있던 여자라는 이유로. 이 족쇄는 피부색이나 성(性)에만 채워져 있는가 보다. 


알제 호텔 1층 로비에서 펼쳐지는 단순 구도 하에 반복되는 협박과 무지에서 오는 당연한 반박의 시퀀스는, 영화 내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장면 연출이면서 동시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차별의 반복' 메시지의 핵심을 이룬다. 그들은 '차별'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낸다. 그렇게 구분하고 적을 만들고 군림한다. 


인간 군상


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ㅁ. ⓒ㈜팝엔터테인먼트



떡 하니 '인종 차별'이라고 붙여 놓은 듯한 확고한 구도에서, 피해자 측의 여자 백인과 가해자 측의 백인 군인 그리고 목격자 측의 남자 흑인 경비가 눈에 띈다. 이들은 이 구도 하에서 드러나지 않는 또 하나의 피해자, 인종적 선의만 있을 뿐 차별 본질의 선의는 없는 방관자, 정녕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목격자이다. 


차별을 기반으로 하는 일대일 구도에서 당사자가 아닐 때 어떤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백인이나 흑인이 아니고 여자도 아니기에, 이들 중 어느 위치와도 맞닿아 있지 않다. 그러하기에 쉽게 생각하고 말하고 재단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에 있어서, 차별을 행하고 차별에 당하는 당사자들보다 더 중요한 건 그래서 차별의 바운더리 밖이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 경계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바운더리 안에 있는 이들이 쉽게 하면 안 되는 생각이나 행동들을 쉽게 할 수밖에 없거나 쉽게 할 수 있거나 쉽게 하고 싶은 것과는 다르게, 바운더리 밖에 있는 이들은 쉽게 하면 안 되는 생각이나 행동들을 말 그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디트로이트>이 보여주는 인종차별 양상의 일대일 구도와 더불어 기타 등등의 인물들 행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간군상들, 그 축소판이기도 한데, 그 다양성의 본질이 다름 아닌 다양성이 존재해서는 안되는 차별의 세계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차별의 세계엔 역설적으로 '차별도 존재한다'는 다양성 또는 상대성 대신 '차별은 절대 안 돼'는 획일성 또는 절대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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