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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영화 <스카우트>로 5.18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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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5.18을 엿보는 영화 <스카우트>의 거시적 시선


영화 <스카우트>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2017년 한국영화계 최고의 발견이자 최고의 히트상품은 <라라랜드> <범죄도시> <택시운전사> <1987> <옥자>도 아닌 <아이 캔 스피크>라고 생각한다. 재미와 감동을 이 영화처럼 과하지 않고 조화롭게 그러면서도 감정선을 최상위까지 끌어내는 영화도 드물었다. 김현석 감독 필모 역사 최고의 쾌거라 할 수 있겠다. 


김현석 감독 필모를 들여다보자. 20대 중반도 되지 않은 약관 나이에 각본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후 몇 편의 명작에 각본과 조감독으로 참여해 인정을 받았다. 2002년에 자그마치 송강호, 김혜수, 김주혁, 황정민 등과 함께 <YMCA 야구단>을 연출했다. 이후 <광식이 동생 광태> <스카우트> <시라노; 연애조작단>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과하지 않은 코미디 장르에 강점을 보이며 좋은 각본의 힘에 영화를 절대적으로 맡기는 편인 듯하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평타 이상, 최소한 나쁘지 않은 수준의 영화를 선보인다. 점점 믿을 만한 감독이 되어간다. 그의 필모 중 <스카우트>는 가장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거니와 가장 저평가되어 있는 영화인데, 사실 그의 최고작 <아이 캔 스피크>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거니와 가장 좋은 작품 중 하나이다. 


99% 픽션의,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10일간 이야기


영화 <스카우트>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우리는 영화 <스카우트>를 임창정, 박철민의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 알고 있다. 포스터만 보아도 그렇게 인식되고, 영화의 겉모습만 보면 그렇게 인식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가는 사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알아차리기 충분하다. 영화는 다음의 두 문구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10일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99% 픽션이다.' 


1980년 5월 초, 신촌골 대학교 야구부 교직원 호창(임창정 분)에게 미션이 떨어진다. 안암골 대학교에 3연패를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 당시 국내 최고의 초고교급 투수 광주일고의 선동렬을 스카우트해오라는 명령. 그는 이미 안암골에 내정되어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5월 18일까지의 10일 뿐. 


와중에 호창은 YMCA에 들렀다가 옛 연인 세영(엄지원 분)을 만난다. 이소룡 팬이었던 그녀는 이소룡이 죽던 날 호창에게 이별통보를 했더랬다. 호창은 세영 곁을 멤도는데, 세영을 좋아하는 동네 주먹 곤태가 위협한다. 한편 호장의 선동렬 스카우트 작전은 신촌골 대학교에서 온 스카우트 병환의 방해작전으로 쉽지 않다. 병환은 호창의 대학교 시절 라이벌이기도 하다. 


호창은 선동렬의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가 지속됨에 따라 위기감을 느껴, 곤태에게 도움을 청해 납치 작전을 펼치기도 하고 선동렬이 미성년자임을 간파하고 부모님을 노리기도 하지만 잘 먹혀들지 않는다. 와중에 석연치 않게 헤어진 세영과의 옛일이 떠올라 괴로운 호창이다. 호창은 선동렬을 스카우트할 수 있을까? 세영은 그때 왜 호창을 떠났던 것일까, 진짜 이소룡이 죽어 너무 슬퍼서였을까?


5.18과 5.18을 아우르는 거대한 의식, 거시적 시선


영화 <스카우트>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외견 상, 그리고 주요 줄거리 상 그 어디에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느끼기 힘들다. 최소한 직접적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느낄 수 있거니와, 행간과 자간과 보이지 않는 이면이 많고 간접적이기에 생각할 여지가 많다. <아이 캔 스피크>를 여러 모로 뜻깊게 봤다면, <스카우트>도 충분히 그러할 것이다. 


감독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주체를 소시민으로 보았다. 실제가 그러하지만,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빨갱이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많은 영화들이 직접적으로 당시를 회상하여 우리 앞에 불러들였고 불러들이며 불러들일 것이다. 그 처참함에 눈물 흘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 


반면 이 영화는 다분히 외부인의 시선이다. 전혀 상관 없거니와, 외려 그런 행위를 반대하는 호창의 시선 말이다. 또한 우리가 흔히 아는 5.18의 생생한 면면을 볼 수 없다. 치가 떨리게 잔인하고, 몸서리 치게 안타까우며, 부들부들 억울한 상황과 사람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오히려 그 어떤 영화들보다 5.18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것 같다. 흔히 선택하는 시선인 미시적이 아닌 거시적으로. 


그렇지만 99% 픽션임을 앞세운 1980년 5월 18일 직전 10일 간의 광주, 전남도청과 더불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광주YMCA 소속의 세영, 그리고 호창과 세영이 헤어질 당시 있었던 일의 전모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제반 상황과 서사를 들여다보면 당시가 보인다. 


우리는 이 영화로 5.18의 단편만 볼 수 있다. 그 이면의 수많은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호창의 깨달음과 변화가 극적으로 보이는데, 그것들이 5.18로 이어지는 동시에 그가 그토록 염원해 마지 않던 선동렬을 포기하는 형태로 나간다. 여타 영화였다면 충분히 로맨스가 주가 되었을 텐데, 이 영화는 거기에 역사 의식과 삶의 의식의 변화를 입혔다. 바로 이 부분이 비록 이 영화가 5.18의 단편만을 보여줄 뿐이지만, 5.18과 5.18을 아우르는 거대한 의식까지 다루는 모습인 것이다. 


암울한 '폭력' 시대의 한 가운데


영화 <스카우트>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단편적 팩트 위에 복잡한 픽션을 얹어 완벽하게 짜여진 각본을 바탕으로 <스카우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당대의 고발이다. 세영과 호창이 헤어지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당대 즉, 1960~80년대 한국의 폭력이었던 것이다. 정부에 의해 시작된 그 폭력은 모든 이들에게 광범위하게 퍼졌다. 


호창과 세영은 그 한가운데도 아닌 외곽 어딘가에 있었지만 인생을 상당 부분 결정 짓는 피해를 입었고, 이후에도 그들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다시 만난 건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때와 곳이었고, 또다시 또 다른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이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극점으로 수렴되지만, 한편 오래도록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지속될 암울한 폭력의 한 가운데라는 상징을 갖는다. 영화는 그 폭력의 한 시발점 스토리를 간략히 보여줬을 뿐이지만, 그들이 이름 없는 소시민임과 동시에 역사를 구성하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줄기라고 했을 때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 


5.18을 생생하게 체험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휴가> <꽃잎> <택시운전사> <박하사탕> <26년> 등을 보아야 할 것이다. 수작도, 평작도, 망작도 있지만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줄 안다. 반면, <스카우트>는 5.18이라는 현상을 체험하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본질을 이해하기엔 제격일 줄 안다. 


그러하기에 5.18을 최소한으로 알고 있는 분들께 이 영화를 추천한다. 5.18을 또 다른 프레임으로 들여다보길 원하는 분들, 5.18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당대를 구성하는 폭력의 진실이 무엇인지 개인적이고 미시적으로 알고 싶은 분들에게도 제격이다. 선동렬을 스카우트한다는 줄거리와 코미디 장르라는 외견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주는 진한 페이소스를 함께 즐긴다면 더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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