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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어설프고 허술한 대규모 범죄 행각의 매력 <로건 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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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로건 럭키>


영화 <로건 럭키> 포스터. ⓒ스톰픽쳐스코리아



스티븐 소더버그는 20대 때 내놓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선댄스와 칸을 휩쓸며 굴지의 천재감독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그는 연출과 각본뿐만 아니라 편집과 촬영과 기획, 그리고 제작에 이르는 영화판 일련의 작업을 거의 모두 섭렵했는데 진정 영화를 즐기는 느낌이랄까. 데뷔 30년이지만 아직 50대 한창의 나이다. 


2000년대 극초반 <에린 브로코비치> <트래픽> <오션스 일레븐>을 잇달아 내놓으며 최전성기이자 지금까지 보건대 마지막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오션스 일레븐>으로 범죄 전문가들이 한 탕을 계획하고 치밀한 전략 하에 다채로운 기법으로 흥미로운 강탈 범죄를 저지르는 '하이스트 무비'(케이퍼 무비)의 전형을 수립했다. 


2010년대 흥행과 비평에서 나쁘지 않은 작품들을 내놓으며 부활의 날개짓을 펴고 있다.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려는 것인가? 와중에 하이스트 무비 <로건 럭키>가 눈에 띈다. 현대판 하이스트 무비의 전형을 세운 장본인인 만큼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지만, <오션스 일레븐>의 후속편들이 워낙 처참했기에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스티븐 소더버그의 하이스트 무비라면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나 싶다. 


비(非) 범죄 전문가들의 대규모 범죄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고교 시절 미식 축구 스타였지만 부상으로 다리를 다쳐 지금은 공사장 인부 일하는 지미 로건(채닝 테이텀 분)은 어느 날 갑자기 다리 부상을 이유로 해고를 당한다. 이혼도 한 마당에 살길도 막막하고 할일도 없는 그는 세계 최대 규모 레이싱 대회의 금고를 털 '한탕' 계획을 세운다. 레이싱 경기장 보수 공사 인부로 일하던 중 그 수많은 돈이 어떻게 지하 금고로 모이는지 그 원리를 터득한 덕분이다. 


그는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이라크 파병을 나갔다가 왼쪽 팔꿈치 아래를 잃고 지금은 바텐더로 근근히 생활하는 남동생 클라이드 로건(아담 드라이버)과 미용사로 일하고 있는 여동생 멜리 로건(라일리 코프 분)의 '로건 남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일명 폭파 전문가 조 뱅(다니엘 크레이그 분)와 두 남동생들의 '뱅 형제'. 


문제는, 그들 중 누구도 '범죄 전문가'라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로건 남매는 범죄 전문가는커녕 제대로 된 범죄를 저질러 본 적도 없는 시골 촌뜨기 블루칼라 노동자들이다. 어설프고 허술하기까지 한 그들이 어떻게 세계 최대 규모 레이싱 대회의 금고를 터는지, 그 과정을 지켜보자. 


매력적인 소소함, 어설프고 허술함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영화는 기대완 다르게 소소하다. 앞서 말한대로 어설프고 허술하다. 아둥바둥 사는 모습이 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그 스스로가 정립한 전형적인 하이스트 무비의 범죄자 같지 않은 이들이 저지르는 깔끔하고 체계적이고 완벽하리만치 믿을만한 행각이 이 영화엔 전혀 나오지 않다시피 한다. 


그 점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기대완 다르다'는 말의 한 꼭지에 해당한다. 전문가 아닌 우리도 이들처럼 어마어마한 강탈을 저지를 수도 있겠다(?) 하는 환상 아닌 환상을 품게 해주는 면도 있겠지만, 그들의 아둥바둥 지리멸렬 좌절과 실패를 겪으면서도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자체에 연민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범죄 행각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비록 꽤나 치밀한 전략을 세웠지만 너무도 쉽게 쉽게 실행에 옮기는 장면들에서는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영화 한 편 또는 드라마 한 편 전체를 할애하는 탈옥을 몇 초만에 실현시키지 않나, 수많은 리허설로도 실패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금고까지의 초행길을 역시 몇 초만에 실현시키는 것이다. 


반면 영화는 캐릭터들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추는 듯하다. 그들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연유을 되짚어보는 게 아닌, 그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 연유를 말이다. 이는 그들이 어설프고 허술하고 소소하기까지 한 이유임과 동시에, 한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휴머니티와 이어진다. 


트럼프 시대를 향한 이유 있는 항변


영화 <로건 럭키>의 한 장면. ⓒ스톰픽쳐스코리아



자본주의 세상에서 휴머니티란 무엇일까. 반자본주의까진 아니더라도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로건 남매가 금고를 터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누구도 납득할 만한 명분이라는 게 없다. 


몸이 성하지 않다는 이유로, 블루칼라라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무시당하는 것이 그들의 솔직한 명분이랄까. 자본주의, 그 핵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레이싱 대회의 금고를 터는 걸로 세상에 소소한 하이킥을 날리는 것이다. 스티븐 소더버그는 영화 외적으로도 메이저 배급사를 통하지 않는 배급으로 자본주의 세상에 소소한 하이킥을 날렸다. 


영화는, 그래서 스티븐 소더버그의 이유 있는 항변이라 할 수 있다. 어떤 항변이냐, 어디를 향한 항변이냐. 자본주의 세상, 더 파고들면 미국의 현 트럼프 시대다. 그는 통계로도 나와 있듯이 블루칼라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엎고 그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영화에서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형편 없는 대우를 받고 있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 웨스트 버지니아는 최악. 


상당히 노골적인 반 트럼프 어조를 영화 전반에 깔고 있음에도 잘 느끼지 못하는 건, 그 진지할 수 있는 어조를 상쇄시키는 발랄한 어조의 연출과 촬영과 편집 센스 그리고 그동안의 연기톤을 180도 바꾼 다니엘 크레이그를 비롯 배우들의 대체적인 톤 다운 덕분이었겠다. 그런 한편, 만연해 있고 당연시 되는 차별과 혐오의 풍토가 현 시대를 잠식하고 있어 잘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은 서늘한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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