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래된 리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매스미디어, 그 속살에 대해서, 영화 <트루먼 쇼>

반응형



[오래된 리뷰] <트루먼 쇼>


영화 <트루먼 쇼> 포스터. ⓒ파라마운트 픽쳐스



'굿모닝,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 성격 좋고 무난한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 분)는 조그마한 섬에서 살며 보험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는 대학 동창 메릴과 결혼했고 역시 대학 동창 말론과 절친 사이다. 트루먼은 대학 때 잠깐 만났다가 황망하게 헤어진 로렌을 만나러 피지로 여행을 가려 한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고 물 공포증을 앓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하늘에서 조명기구가 떨어지질 않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났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와서 끌고가버리질 않나,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자신의 이동경로를 고스란히 생중계하고 있질 않나. 하지만 엄마와 아내는 그의 말을 전혀 믿어주질 않고, 말론은 그의 말을 믿는 대신 자신을 믿어야 한다며 위로의 말을 함께 건넨다. 


한편, 트루먼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전 세계 수백만 명 시청자에게 완전한 리얼리티 삶을 보여주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다. 그가 사는 섬은 그 자체로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세트장이고,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섬에 사는 모든 사람이 연기자이다. 이를 총괄기획한 크리스토프는 '트루먼 쇼'를 진짜 삶이자 특별한 삶이라 믿는다. 그리고 모든 게 완벽하게 만들어진 그곳을 천국이라 믿는다. 


거장과 최고의 도전이 빚어낸 최고의 작품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파라마운트 픽쳐스



영화 <트루먼 쇼>는 199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사한 짐 캐리의 대표작 중 대표작이다. 그의 필모에서 <마스크> <덤 앤 더머> <에이스 벤츄라> 등의 코미디와 <이터널 선샤인>이라는 드라마를 잇는 코미디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마제스틱> <예스맨> 등으로 이어졌다. 


한편 피터 위어 감독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70년대에 칸영화제를 섭렵하며 호주의 거장으로 이름 높은 그는 잘 알려진 명작 <죽은 시인의 사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수작 로맨틱 코미디 <그린 카드>로 유명세를 떨쳤다. <트루먼 쇼>라는 코미디가 가미된 드라마로 정점을 찍었고 이후 <마스터 앤드 커맨더>와 <웨이 백>이라는 대작 느낌이 물씬 풍기는 두 작품을 끝으로 더 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영화는 피터 위어라는 거장의 작가정신과 여유, 짐 캐리라는 당대 최고의 '코미디' 배우의 도전 아닌 도전이 빚어낸 최고의 작품이다. 몇 번을 봐도 '재미'를 보장하는 이 영화는, 지금은 일상화되어 있거니와 그래도 여전히 열광하는 몰래카메라 또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와 연결되어 있다. 제작진의 주장에 따르면, 트루먼의 진짜 인생이다. 


몇 번을 보면 보이는 '논란'의 부딪힘은, 트루먼 쇼를 만든 크리스토프의 철학과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좌지우지 하는 이른바 '신'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다분히 '비인간적인' 방송 철학과 맞닿아 있는 그의 '인간적인' 믿음이 현대사회의 모순적인 병폐를 상징하는 것 같다. 


매스미디어 병폐의 우화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파라마운트 픽쳐스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조작되어진 이 세계, '트루먼 쇼'의 세계에서 트루먼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크리스토프는 말한다. 그가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우리가 사는 곳은 역겹지만 그가 사는 곳 씨헤이븐은 천국이라고 말이다. 더욱이 트루먼은 가짜가 아닌 진짜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거기엔 '진실'이 없다. '트루먼 쇼'에서 트루먼만이 진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트루먼(truman)'이라는 이름을 들여다보자. '트루', 즉 진실(true)라는 단어에서 추출했다는 게 명백하다. 트루먼은 진실을 알아야 할 권리가 있고, 결국 이 트루먼 쇼의 결말은 트루먼이 진실을 찾아 가는 것으로 결말이 날 공산이 크다. 그게 비록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할지라도 말이다. 


한편, 이 영화를 지탱하는 다른 큰 축 크리스토프(christof)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이름은 전지전능하신 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christ)에서 온 게 분명하다. 그는 트루먼의 인생뿐만 아니라, 트루먼이 사는 세계와 그 세계에서 일하는 연기자 모두에게 자신의 철학을 주입시켰다. 그들은 모두, 특히 트루먼의 아내와 절친은 사생활과 사회생활이 따로 없는 인생을 영위하고 있고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게 진짜 인생의 일부분이고 숭고하며 축복받았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통제'를 '약간의 통제'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믿음은 크리스토프의 철학에 기초한 것이고 그 철학에 쉼없이 숨을 불어 넣고 있다. 가히 '방송 예술'이라 칭할 만한 이 작태는, 수많은 광고가 딸려 있는 시청률과도 맞닿아 있는 바 현대사회를 지탱하면서도 파괴시키고 있는 여러 병폐 중 하나인 '매스미디어 병폐'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는 우화이기도 하다. 


누구도 매스미디어를 피해갈 수 없다


영화 <트루먼 쇼>의 한 장면. ⓒ파라마운트 픽쳐스



매스미디어 병폐 중에서도 가장 큰 병폐는 통합, 통제 등의 전체주의 잔재들이다. '통합'이라는 긍정적인 단어는 '통제'와 함께 할 땐 더할 나위 없이 악랄한 단어가 되고 만다. 영화에서 그것은 크리스토프가 만들어낸 가상임에 분명한 진짜 세계에 블랙홀처럼 모든 걸 쓸어담아버리는 걸 뜻한다. 


'천국'이라 명명되어진 그곳은 크리스토프의 명명백백한 철학과 그 철학을 뒷받침하는 어마어마한 시청률 아래에서 모든 것이 허용되고 가능하다. 그건 작은 나라의 예산과 맞먹는 엄청난 돈과 인력이 투입되어 철저하게(누군가 생각하기로는 약간의) 통제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스미디어를 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 어딜 가든 매스미디어가 우릴 반기고 유혹하고 협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매스미디어를 피해갈 수 없다. 거기에 아무런 생각없이 그저 즐기기만 하는 사람도, 거기에 그 무엇도 비할 수 없는 심각성을 느끼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크리스토프의 말마따나 우리 모두 거기에 어떤 식으로든 익숙하고 안주하기 때문인 것이다. 


방법은 '진실'뿐인가. 매스미디어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져 우리 눈앞에 보여지는지 속속들히 아는 것인가. 아니, 그 이후에 크나큰 절망감을 느낄 게 자명하다. 트루먼이 '트루먼 쇼'의 진실을 알고 그 세계를 탈출하게 된다고 해서 그는 그의 진짜 삶, 스타가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매스미디어의 진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이 재미있는 영화는 끝까지 그 재미를 놓치지 않은 채 거대하고 진지하고 속절없는 물음만 던져놓는다. 우리는 그 막막한 물음 앞에 한동안만 멍하니 생각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당연한듯이 다른 매스미디어를 찾을 것이다. '트루먼 쇼'가 아닌 또 다른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돌릴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