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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2017년이 지나기 전에 꼭 봐야할 영화 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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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챙겨보자


올해에도 역시 참으로 많은 영화가 제작되어 우리의 눈과 귀와 머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영화를 이루는 기술, 스토리, 메시지 등에서 이제까지 축적해온 게 너무도 많아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영화들은 여지없이 그 생각을 무너뜨린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는 걸 절실하게 느낀다. 영화를 영상으로만 만들어진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영상은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바야흐로 이야기의 시대, 영화도 이야기가 최소한의 기본이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영화에서 영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단적으로 절대적이다. 그 사실을 간과하거나 무시한 게 아닌, 그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난 후 보이는 것들이다. 


올해 영화 이슈를 간략히 훑어보자. 역시 '송강호', 유일하게 천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 운전사>가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중간에서 포기한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인데, 그럼에도 단연 으뜸의 흥행력을 보여주었기에 박수를 보낸다. <범죄도시> <청년경찰>은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소위 대박을 친 경우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큰 즐거움과 큰 돈을 안겨준 신드롬의 주인공들이다. 


반면, 역대급 망작과 최고 기대작의 실패도 올해 영화계를 풍성(?)하게 했다. 김수현 주연의 <리얼>은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지만 엄청난 논란에 휩싸여 역대급 '망작'으로 최악의 흥행과 함께 마감했다. 류승완 감독의 <군함도>는 초호화 캐스팅과 엄청난 제작비로 2017년 최대 기대작 중 하나였지만,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 왜곡 등의 논란에 휩싸여 흥행 실패를 맛보았다. 역시 신드롬의 주인공들이다. 


올해가 가기 직전, 시간을 어떻게든 내서 봤으면 하는 작품들이 여기에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식견 하에 추려진,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다. 개중에는 누구나 알 만한 흥행 작품도 있고, 많은 인기를 끌지 못한 '듣보잡' 작품도 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어디에 내놔도 제 몫을 충분히 할 좋은 작품들인 건 분명하다. 


* 5편에 속하지 못했지만, 2017년이 지나가도 한 번쯤 봤으면 하는 2017년 작품들 10편을 추려 제목만 나열해본다. 이 작품들 또한 왠만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너의 이름은> <컨택트> <히든 피겨스> <겟 아웃> <지랄발광 17세> 

<프란츠> <몬스터 콜> <베이비 드라이버> <남한산성> <폭력의 씨앗>






영화 <문라이트> 포스터 ⓒ오드(AUD)


① 문라이트(Moonlight)


명실공히 2016년 최고의 작품이다. <라라랜드>를 제치고 제89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고야 말았는데, 그야말로 영화의 모든 이들이 흑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영화 외적으로도 '쾌거'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2시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한 인간의 성장을 오롯이 대면할 수 있다. 


영화는 미국이 아마도 가장 덮고 싶어 하는 부분을 들춰내고자 한다. 배경이 되는 곳은 마이애미 흑인 지구의 마약 소굴, 그곳의 작고 한 없이 힘 없는 아이 리틀. 희망도 슬픔도 없이 공허하게 어른이 되어 간다. 그런 그에게 후안은 많은 힘이 되는데, 그가 말한 '달빛 아래에선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빛나지'는 일종의 지침이 된다. 


성장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그에게 성장에의 길은 어둠 그 자체다. 그것도 겹겹이 쌓인. 그래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달빛 같은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아니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영화에 달빛이 스며들 때 전율하지 않는 이 없고 눈물 흘리지 않는 이 없다. 성장을 함부로 논하지 말라. 성장은 파괴되고 파괴하는 어둠 속 빛의 미학이다. 



영화 <덩케르크>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② 덩케르크(Dunkirk)


명명백백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신작이다. 뜬금없이 전쟁영화를 들고 나온 그에게 의문을 품은 이들이 많았었는데, 재난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다른 차원의 전쟁영화를 선보여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저 유명한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배경으로 한다. 


놀란은 전쟁영화를 재난영화로 둔갑시킴으로써 오히려 전쟁의 비인간적이고 무차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재난이란 예측불허하고 무차별적이며 인간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영화는 재난 상황은 매우 미시적으로 재난에 처한 인간은 매우 거시적으로 그려내며, '재난'의 전형적이며 실제적인 무서움을 역설한다. 


이쯤에서 놀란이 택한 마무리는 '인간'이다.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재난전쟁을 버틸 수 있는 건, 그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인간의 숭고함이라는 것이다. 새삼 곳곳에 뿌리박혀 있는 인간성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런 세계이다. 폭력적일수록 더더욱 숭고해지는 인간성이 우리를 지켜주는 세계. 



영화 <윈드 리버> 포스터 ⓒ유로픽쳐스


③ 윈드 리버(Wind River)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로스트 인 더스트>의 각본을 맡아 자타공인 할리우드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으로 급부상한 테일러 쉐리던이 연출자로 데뷔했다. 그는 전작에서 여지없이 '속살'을 비추는 데 천착했는데, <윈드 리버>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인디언 보호 구역이자 끝없이 펼쳐진 설원 와이오밍주 '윈드 리버'로 가보자. 


야생동물 사냥꾼 코리는 설원 한복판에서 여인의 시체를 발견한다. 곧 FBI 요원 제인이 달려오고 공조 수사가 시작된다. 이 설원은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미국의 축소판이다. 영화는 윈드 리버에 마지막 희망이 있다고 보고, 미국 그 자체인 제인이 그 희망의 키를 쥐고 있다고 보았다. 그녀가 얼마나 이 설원(자연)을 이해하고 윈드 리버(인디언)을 존중하고 그 모든 것에 공감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쉬워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단어들, 공감과 이해. 사실 그것들이 전부다. 그것들만 이행해도 세상은 한층 더 살기 좋아질 것이다. 우리는 윈드 리버가 상징하는 막연하면서도 실질적인 '벽'을 허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 다가갈 준비나 되어 있는가? 



영화 <우리의 20세기> 포스터 ⓒ그랜나래미디어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


영화는 나이도, 세대도, 성도, 삶의 방향이나 지침도, 생각도 완전히 다른 다섯 남녀를 통해 20세기의 면면을 보여준다. 상당한 미장셴을 앞세워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강한 스토리와 구성을 감각적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들의 소소한 서사와 20세기를 우리는 왜 보아야 하는가. 


그들의 20세기는 문자 그대로 1999년까지가 아닌 1979년까지의 시대다. 1980년대부턴 지미 카터 대통령의 연설대로 절제의 통제의 시대, 획일화된 시대로 진입한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20세기는 문화와 세대와 환경에서 비롯된 차이들이 서로 편견을 갖지 않고 인정하는 시대인 것이다. 


영화는 그런 모습들을 다양한 장치들로 보여주려 한다. 빨리 감기, 홀로그램, 미래지향적이고 몽환적인 음악들 말이다. 영화에 활기를 불어줌과 동시에 품격까지 최소 한 단계 높이는 결과를 도출한다. 지나간 한 시대를 기억하기에 알맞은, 여운이 길고 짙게 나는 장치들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봤으면 하는 가장 좋은 영화이다. 



영화 <빛나는>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⑤ 빛나는(光, Radiance)


일본 최고의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작품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행간과 자간을 꼼꼼히 살피고 읽어내어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기에 호불호가 갈린다. 그런데 이 작품 <빛나는>은 그런 단점(?)들을 해소한 느낌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보아도 감동이 스며든다고 할까. 


영화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음성 해설을 쓰는 작가와 점차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의 만남을 다룬다. 그러면서 관계와 성장과 상실의 하모니를 내보이는데, 그 추상적이기 짝이 없는 개념들을 정교하게 잘 풀어낸다. 우린 그 와중에 '빛나는 순간들'을, 우리 인생에도 있을 빛나는 순간들을 생각하게 된다. 


이제 다시 빛을 볼 수 없는 주인공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바, 옛날 어느 때 어느 순간을 그리게 되고 현재의 이 순간을 붙잡고 싶어지며 미래의 그때 그 순간을 기다리게 한다. 올해의 마지막을 수놓은, 수놓을 아름다운 영화 <빛나는>. 2017년의 마지막 빛나는 순간에 이 영화가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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