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래된 리뷰

이준익의 소품이 윤동주와 송몽규를 품다 <동주>

반응형



[오래된 리뷰] 이준익 감독의 <동주>


최근 몇 년간 인상적인 행보를 보이는 이준익 감독의 특별한 영화 <동주>. 믿기 힘들지만 최초로 윤동주를 주연으로 하였다. ⓒ메가박스 플러스엠



이준익 감독은 일찍이 영화 일을 시작해 90년대 초반 드디어 연출 데뷔를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그러고 2000년대 초반 <황산벌>로 화려하게 돌아오기까지 10년 동안 제작자로 이름을 높였다. <간첩 리철진> <아나키스트> <달마야 놀자>가 전부 그가 제작한 영화들이다. 그러곤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로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한국 최고 감독 대열에 합류한다. 


하지만 곧바로 찾아온 기막힌 슬럼프, 4년 동안 4편의 영화를 내놓지만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2010년 은퇴 선언을 하고 철회하는 '은퇴 소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절치부심, 2013년부터 내놓은 역시 4년 동안 두 글자 제목 4편의 작품들이 모두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목적을 훨씬 상회함으로써 예전의 명성을 뛰어넘는 시대를 맞이한다. 


2016년 개봉한 <동주>는 겉보기에 특별할 것 없이 굉장히 특별한 영화다. 자타가 공인하는 상업영화'감독인 이준익이 가장 비상업적으로 만든 게 분명하지만, 제작비 대비 가장 큰 폭의 성공을 거둔 영화이다.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임에 분명하지만, 이 영화야말로 최초로 윤동주를 주연으로 한 영화이다. 그리고 2017년, 올해는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다. 


윤동주와 송몽규의 10년


영화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후반 일생을 따라간다. 그들은 불과 28살의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메가박스 플러스엠



윤동주(강하늘 분)는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북간도 땅을 떠나지 않았다. 그와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사는 동갑내기 고종사촌 송몽규(박정민 분)는 동주와 다른듯 한 길을 함께 걷는다. 스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군관학교에 입교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난 그는 독립운동으로 체포 압송되어 결국 석방되었고, 동주와 함께 경성에 있는 연희전문학교에 입교한다. 


몽규의 주도 아래 잡지를 만들어 문학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독립운동을 이어나간다. 시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은 몽규는 문학에 의한 혁명에서 행동에 의한 혁명에로 나아갔고, 끝없이 회의하고 고뇌하고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했던 동주는 그 모든 걸 시 속에 녹여냈다. 


동주와 몽규는 일본으로 향한다. 전시총동원체제 하의 일제에 의한 엄청난 압박 속에서는 차라리 일본 본토가 낫다는 판단이었다. 동주는 평생을 염원한 시집 출판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반면 몽규는 일본 본토에서 대대적인 혁명을 준비하는데... 동주와 몽규는 이 살벌한 시대의 광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가. 


영화는 윤동주와 송몽규의 10년을 오롯이 따라간다. 그들의 삶을 100%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았기에 '팩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윤동주의 절절하면서 아름다운 시와 엮이는 상황들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이 다가온다. 흑백의 힘이고, 윤동주를 분한 강하늘의 힘이며, 무엇보다 이준익의 힘이겠다. 


완성된 우주가 있는 소품


<동주>는 명백한 '소품'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명백한 '우주'가 존재한다. ⓒ메가박스 플러스엠



이준익 감독은 대작보다 소품을 만드는 재주가 탁월하다. 대작의 기상을 웅비하고 있지만 소품밖에 못 만드는 게 아니라, 애초에 탁월하기 그지 없는 웰메이드 소품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소품만을 만드는 이의 한계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 작은 것 안에 하나의 우주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주>는 소품 중에서도 소품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이지만, 그곳엔 온전히 완성된 하나의 우주가 있고 인간이 있고 사상이 있다. 영화는 그저 동주와 몽규가 암흑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걸 그야말로 간략하게 추려 보여주려 한 것이겠지만, 우리는 그 이상의 것들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봐도 알 만하고 피부로 느낄 정도의 일제강점기 어둠을 광범위하게 주인공으로 내세운 게 아닌, 그 시대를 피부로 느끼며 살아간 이들만을 통해 알게 되는 어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이 우리를 일깨운다. 그 시절은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절이지만,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시절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살아가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모든 이들


윤동주와 송몽규를 비롯,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모든 이에게 바치는 영화다. ⓒ메가박스 플러스엠



너무나도 유명해서 오히려 잘 알지 못하고 잘 알고자 하지도 않는 윤동주 시인의 삶, 그리고 내면. 또한 살아생전 동주가 한 번도 넘지 못한 산, 송몽규라는 사람. 동주가 한 번도 이룩하지 못한 신춘문예 당선을 몽규는 18세 때 해냈고, 19세 때는 당차게 혼자 중국으로 향했으며, 함께 진학한 연희전문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졸업한 것도 몽규였다. 또한 함께 일본으로 가 몽규 혼자만 최고의 교토제국대학에 입학한다. 


그야말로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라면 언제나 조연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윤동주는 한국문학사 아니 한국 역사에서도 영원히 남을 위인이 되었다. 우리가 <동주>를 보며 느끼는 공감과 아이러니가 여기서 비롯되거니와, 위인을 대함에 있어 어울리지 않는 친숙함의 이유 또한 여기에 있겠다. 


한편, 송몽규라는 인물의 새로운 발견 또는 재조명이라는 점에서 엄청난 공헌을 했다. 그 유명한 문익환 목사가 이들의 어린 시절 친구였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 역시 그 유명한 정지용 시인이 윤동주 시인이 그토록 존경했던 대상이었단 사실도 역시 익히 알려진 바, 윤동주와 평생을 함께 한 송몽규란 존재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민망하다 싶다. 


새삼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이들의 면면을. 그리고 불러본다.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이름을. 그리고 새겨본다.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그리고 그려본다.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이들을. 그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들여다보아야 하고 재조명되어야 한다. 

728x90